망 이용대가 논의 글로벌 확산..."국내 입법 재점화 필요"
국내에서 망 무임승차 방지법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는 가운데 해외 각국에서 망 이용대가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이견 없이 잇따라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유럽연합(EU)을 비롯한 해외에서 망 이용대가 논의를 주도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해외 입법 동향을 살펴보고 그 시사점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법안 개정 논의가 다시 활발히 전개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디지털 심화 시대에 올바른 제도를 갖추고 산업의 발전과 공정한 네트워크 사용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는 이유다. 특히 망 이용대가 논쟁을 두고 사실보다 가치에 기반한 주장이 빗발치는 점을 고려해 시장과 산업 환경의 정확한 실태를 논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12일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과 지디넷코리아가 주최한 '망 이용대가 글로벌 논의를 위한 전문가 간담회'에 발제를 맡아 “일부 빅테크의 망 무임승차가 계속될 경우 ISP(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 CP(콘텐츠사업자), 이용자 간 선순환 인터넷 생태계가 붕괴하고 장기적으로는 통신망 고도화 투자를 위축시켜 ICT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에만 속한 문제가 아니라 해외 여러 사례를 고려해 볼 때 ICT 산업의 발전과 공정한 네트워크 사용을 위한 정책 방안을 세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윤영찬 의원은 “망 이용계약 불공정 논란을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미디어 생태계 구축을 위해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시장 공정성과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규제를 통한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해외 곳곳에서 망 이용대가 논의 확산 이날 신 교수가 소개한 망 이용대가 글로벌 논의 사례는 유럽연합(EU)과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본격적인 법안 제정에 나선 EU 외에도 빅테크 사업자의 모국인 미국에서도 망 무임승차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브라질, 인도, 베트남과 같은 신흥 국가에서도 유사한 분쟁이 일고 있다. 대규모로 트래픽을 일으키는 CP가 등장하면서 네트워크 산업계와 협상력의 차이가 벌어지고, 인터넷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에 공정한 분담이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한국에서만 논란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선 미국에서는 최근 연방통신위원회(FCC)의 브렌든 카 상임위원이 막대한 투자가 소요되는 네트워크 구축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대형 CP가 기여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2021년 미국 의회에서는 인터넷 공정 기여법이 발의됐고 FCC가 이를 지지하는 가운데 보편 기금을 조달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아울러 미국 13개 주에서 프랜차이즈피 소송이 일고 있는데 이 역시 CP가 인프라 투자 유지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EU는 최근 망 이용대가 논의가 가잘 활발하게 이뤄지는 지역으로 꼽힌다. 지난 2월 MWC 개막 직전에 EU 정책위원회가 기가비트인프라법 제정에 착수하고 지난달 의견수렴을 마친 상황이다. 이 법의 공개 설문 과정을 살펴보면 모든 디지털 산업 플레이어에 의한 망의 공정한 기여가 법안의 주요 골자를 이루고 있다. EU 전체 법안 논의 외에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도 개별 논의가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 3개 국가는 기가비트인프라법 제정 착수 전부터 대형 CP의 공정한 네트워크 비용 분담을 EU에 촉구했다. 특히 스페인 정부는 주무부처 장관이 나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하기 위한 방안에 목소리를 냈다. 남미의 브라질에서도 네트워크 투자 분담 논의를 사업자 간 충돌로 간주하지 않고 통신사가 지속적으로 투자하면서 산업 생태계 전체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 논의에 돌입했다. 브라질의 망 이용대가 제도화 의견 수렴은 이달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아시아에서는 인도와 베트남에서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 인도는 공정한 ICT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빅테크에 대한 규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현지 통신산업 규제당국이 CP와 ISP 간 수익 공유 메커니즘을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 디지털 경제 구축을 위해 정부가 나서 공정한 분배를 담는 법 개정 방침을 세웠다. 네트워크 생태계 지속가능성 높여야 신 교수는 이 같은 해외 사례를 소개하면서 “국내의 망 이용대가 논의는 일부 CP가 망을 이용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급을 거부하는 행위를 근절해 시장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망 이용대가 분쟁 발생 배경에 CP와 ISP 간 정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존 법령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거나 집행력을 강화해 추진할 수 있는지 재고해야 한다”며 “기존 법령으로 한계가 있다면 현행 법령의 개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특히 망 이용대가 논쟁에 대해 시장의 현상에 기반한 사실 위주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장 환경에 적합한 용어를 정의해 불필요한 논란을 줄여야 하는 점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인터넷 연결 방식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달라졌는데 과거 용어에 얽매여 가치 논쟁에만 빠져있는 점을 지적한 대목이다. 그는 또 “망 이용계약 조건이나 정산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계약 당사자 간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며 “하지만 협상력 차이로 문제가 생기는 점을 대비해 양측에 모두 협상의 책임을 부과하는 입법 보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토론에 참여해 “인터넷이 디지털 사회 경제 환경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인터넷의 구축 운영 관여자나 참여자 사이의 이익 충돌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렇기에 충돌하는 이익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망 고도화와 확충을 통해 참여자 모두가 혜택을 입도록 해야 하는 만큼 참여자 사이의 적정한 책임과 역할 분담에 관한 논의는 불가피하다”며 “효율적인 네트워크 자원의 활용을 위해 ISP와 CP 모두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미디어미래연구소의 권오상 센터장은 현행 법령에서도 망 이용대가는 논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권 센터장은 “기존 전기통신사업법에서 부가통신사업자는 기간통신사업자의 전기통신회선설비를 '임차'하는 점을 명확히 규정했다”면서 “법이 개정된 이후에도 회선설비를 보유하지 않은 부가통신사업자가 기간통신사업자의 회선설비를 '이용'해 전송하고 고시에서도 망 제공과 이용의 관계는 명확히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즉, 법 개정으로 '임차' 규정이 '이용'으로 바뀌었지만 부가통신사업자가 자사가 소유하지 않은 망 이용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의 윤상필 실장은 “EU에서 망 공정 기여 제도를 도입하면서 한국의 인터넷 사례를 중요한 참고 자료로 삼고 있다”며 “일부에서 한국의 상황을 왜곡하는 경우가 있는데 국내 인터넷 환경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가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대형 CP가 자체 CDN을 구축하거나 새로운 CDN 사업자가 생태계에 한 축으로 자리를 잡는 것처럼 인터넷이 연결된 구조와 사업자 간 계약 관계들이 인터넷 초기와는 현재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적합한 용어를 찾아 논의해야 한다는 점에 크게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망 이용계약 논의 과정에서 서로 다른 개념이 구별되지 않고 쓰이고 있는데 특정 진영을 떠나 정책을 논의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명칭과 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망 이용대가의 문제를 통상 문제로 보는 시각에 대해 전문가들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신민수 교수는 이에 대해 “FTA에 포함된 조항은 부가통신사업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것인데 한국 기업도 해외에서 다 지불하는 비용인 만큼 통상 문제를 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경진 교수 역시 “내국민 차별 금지와 최혜국 대우 문제가 핵심 사안인데 국내 사업자도 망 이용대가를 내는 만큼 해당 사항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