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서 꿈 찾은 25살 男, 최연소 주한 대서관저 셰프 되기까지
지난 9월 배달의민족이 미국 UCLA 로멜라 연구소와 합작한 요리 로봇을 최초 공개해 화제가 됐다. 아직 프로토타입 단계지만, 로봇이 조리의 기본 동작인 칼질과 반죽하기 등을 능숙하게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로봇 팔이 감자를 튀기고 스테이크를 구워 접시 위에 뚝딱 올려놓는 장면도 볼거리였다. 이를 바라본 대중들은 신기해하면서도 “언젠가 요리사들도 로봇으로 대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요리 로봇의 등장을 지켜본 전문 셰프의 시각은 어떨까. 기자는 주한 덴마크&노르웨이 대사관저에서 근무하는 김민기 총괄셰프를 지난 달 25일 성북구 정릉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때마침 요리 로봇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이 커졌고, 다양한 '먹방'으로 셰프 직종에 대한 인기도 높은 터라 두 가지 궁금증을 모두 풀어봤다. "인간과 로봇은 공생관계...사람의 역할과 가치 더 높아질 것" 먼저 요리 로봇 등장에 대해 김민기 셰프는 사람의 손길이 들어가는 요리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요리 로봇과 사람은 공생 관계로, 로봇이 사람의 보조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이었다. “요리 로봇이 처음 나왔을 때 걱정은 됐어요. 그렇지만 어느 분야든 로봇과 사람이 공존을 잘 할 거라고 생각해요. 단순 업무는 로봇이 하겠지만, 사람이 먹는 음식이다 보니 사람의 손길이 들어가는 일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거 같아요. 평소에 간단히 먹는 음식은 로봇이 만들어도, 손길이 필요한 미식 요리는 사람의 역할과 가치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 고1 때 해외여행 다니면서 셰프 꿈 키워...캐나다·미국서 전문 셰프 길 걸어 1998년생인 김민기 셰프는 현재 주한 대사관 총괄셰프 중 최연소다. 그는 고1 때 캐나다 오타와로 넘어가 셰프의 꿈을 키웠고, 다양한 경험과 노력 끝에 현재의 위치에 서게 됐다. “가족들과 해외 여행을 다니면서 호텔 조식을 먹는 기회가 많았는데, 긴모자를 쓴 셰프를 보면서 나도 저런 직업을 가지면 여러 나라들을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고1 때 셰프가 되겠다는 결심이 들어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캐나다 오타와로 건너가 현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됐어요. 이 때 영어와 인문 수업을 들었고, 고3 때 현장 체험을 위해 페어몬트 그룹에 있는 호텔에 가서 요리를 배웠죠.”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세계 3대 요리 학교 중 하나인 미국 뉴욕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진학해 본격적인 셰프의 꿈을 키웠다. 본인이 원하면 4년 동안 대학을 다닐 수도 있었지만 2년 간 본 수업을 듣고, 뉴욕 미슐랭 1스타 '그래머시 태번'에서 약 반년 동안 견습생으로 일했다. 이어 그는 한국으로 건너와 군입대를 했다. 원주에 있는 국군지휘통신사령부 51정보통신대대에서 취사병 '비슷한' 역할을 했다. 일반 취사병이 아닌, 특정 간부들 대상으로 음식을 만들었는데, 요리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이후 김 셰프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샌프란시스코 미슐랭 2스타인 '쎄종'(Saison)에서 메인 씨푸드 셰프로 전문성을 키웠다. 근처에 실리콘밸리가 위치해 있어 구글, 트위터, 테슬라 등 고액 연봉자들이 많이 찾는 레스토랑에서 해산물 요리를 전담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손꼽히는 미식 도시예요. 미슐랭 가이드북을 봐도 별이 많은 지역이죠. 쎄종에서 일하면서 해산물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고, 일의 강도나 음식의 디테일이 훨씬 높다는 걸 체감했죠. 생선 하나를 다루더라도 생선 해체부터 숙성, 그리고 소스로 재우는 데까지 3~5주 걸리는 요리를 하기도 했어요.” 한국서 덴마크&노르웨이 총괄셰프로 화려한 데뷔 학교에서 유명 레스토랑을 거쳐, 심지어 군대에서까지 다양한 요리 경험을 쌓은 김민기 셰프는 올해 4월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왔다. 전문 분야를 살려 파인 다이닝(고급 식당)을 알아보던 중, 요리를 하면서 영어도 활용할 수 있는 곳을 눈여겨 보게 됐다. 그러다 마침 실력있는 셰프를 찾던 덴마크 대사관저와 인연이 닿았다. 나아가 씨푸드 음식이 중요한 노르웨이 대사관저 총괄셰프까지 겸임하는 기회를 얻었다. “대사관저에서 아침·점심·저녁을 차리는 업무가 아니라, 1주일에 2~3번 정도 열리는 행사 음식을 준비해요. 코스 메뉴를 직접 구상하고, 와인부터 음식까지 대사관저를 찾아오는 주요 인사들에게 대접을 합니다. 손님은 보통 4명부터 많게는 80명까지 오세요. 레시피를 직접 짜고 개발도 하는데, 모든 걸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힘도 들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부담도 됐지만, 대사관님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이마트 씨푸드 아카데미 통해 노르웨이 수산물 요리 선보이기도 김민기 셰프는 지난 달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와 이마트가 개최한 '2023 씨푸드 아카데미'에 참석해 그동안 갈고 닦은 요리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전국 이마트 지점별 수산물 담당자들이 참여한 이 행사에서 김 셰프는 노르웨이 연어와 고등어 등을 활용해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메뉴들을 직접 요리했다. “손님들은 보통 연어를 구워먹거나 회로 먹어야 한다고만 생각하는데, 이 외에도 다양한 요리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드렸어요. 현장에서 직접 고객과 만나는 수산물 코너 담당자분들께 노르웨이 수산물로 어떤 음식을 할 수 있는지 알려드리고 소개함으로써 판매고를 늘릴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린 거죠.” 더 많은 경험과 연륜 쌓아 다양한 국내외 음식 널리 알리고파 20대 중반인 김 셰프는 본인을 아직 부족한 셰프라고 낮춰 말했다. 이에 더 많은 경험과 연륜을 갖춰 나중에는 우리나라 음식을 해외에 알리고, 또 반대로 해외의 음식을 우리 입맛에 맞게 조리해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나아가 밀키트와 같이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음식을 손쉽게 맛볼 수 있는 사업도 꿈꾼다고. “아직 더 많은 연륜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중에는 직접 레스토랑을 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또 우리나라만큼 유통과 배달, 냉장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가 없는데, 이런 특징을 살려 밀키트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요. 해외에서 요리와 관련 문화를 경험했으니 이런 장점들을 살려서 좀 더 다양하고 맛있는 해외 음식들을 밀키트로 더 쉽게 많은 사람들이 맛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하는 거죠. 또 한식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 너무 뻔하지 않은 한국 음식을 해외의 일상 식단에 넣을 수 있는 것도 해보고 싶습니다.” 외식 문화, 언어 학습 등 다양한 경험 언젠가 값지게 쓰여 셰프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선배로서 어떤 팁을 줄 수 있을까. 김 셰프는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해볼 것을 추천했다. 이런 경험들이 결국에는 하나의 끈으로 연결돼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낸다고 확신했다. “무슨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셰프가 된다고 해서 요리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외식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이 큰 도움이 되거든요. 저도 만약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일을 맡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물론 저는 운이 좋아 상대적으로 쉽게 여러 경험과 기회를 얻은 것도 있겠지만, 나는 이래서 안 될거야란 생각에 포기보다는 간접 체험 등 시야를 넓히다 보면 누구나 결국 좋은 결과를 잡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