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차처럼 도입해선 늦는다"...국방 AX 거점으로 혁신 해야
"인공지능(AI)은 전차처럼 규격 맞춰 납품받는 무기체계가 아닙니다. 요구사항을 정해 놓고 5년 뒤 결과물을 받는 방식으로는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6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멀티캠퍼스에서 만난 박남희 교수는 국방 AI 도입이 더딘 이유로 기술 부족보다 구조적 한계를 꼽았다. 국방부 지능정보화정책관을 지낸 그는 "지금 국방에 필요한 것은 완벽한 계획서가 아니라 빨리 실험하고, 작은 성공을 쌓아가는 구조"라며 "민간 기업이 실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국방 AX 거점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AI 구축에 '전차 규격'...사업 방식 개선 필수 박 교수가 가장 먼저 짚은 문제는 국방의 느린 획득 구조다. 현재 국방 사업은 요구사항 도출부터 예산 반영, 실제 도입까지 통상 5년 이상이 소요된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AI 생태계에서 5년 전의 기획은 이미 죽은 기술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전통 무기체계는 규격이 비교적 명확하지만 AI와 소프트웨어(SW)는 데이터와 운영 환경에 따라 성능이 계속 달라진다"며 "처음 정한 요구사항을 몇 년 뒤 그대로 맞춰오는 방식으로는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체계를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 부대의 만족도가 90%를 넘어도 서류상 규격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합격이냐 마냐를 두고 몇 달씩 실랑이를 벌이는 게 현실"이라며 경직된 구조를 꼬집었다. SW 사업에 적합하지 않은 국방 AI 사업 환경도 개선해야 할 요소로 꼽혔다. 구축 예산은 잡히지만 이후 성능 개선과 재학습, 운영 고도화에 필요한 유지보수 예산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AI는 한 번 납품하고 끝나는 체계가 아니라 계속 데이터를 넣고 고쳐가야 성능이 올라간다"며 "그런데 국방 사업은 구축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운영과 개선이 뒤로 밀린다"고 말했다. 여기에 육·해·공군의 장비와 교리, 용어가 제각각이라 시스템 통합 난도도 높다. 그는 "요구사항은 복잡한데 유지·고도화 여력은 작으니 실력 있는 기업일수록 국방 사업을 부담스러워한다"며 "처음부터 운영과 개선까지 보는 예산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패하면 문책하는 문화에선 AI 클 수 없어 박 교수는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조직 문화도 국방 AI 혁신의 큰 걸림돌로 꼽았다. AI는 처음부터 완벽한 정답을 내놓는 기술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능을 끌어올리는 방식인데 지금 국방의 구조는 그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3년 뒤 안전한 결과물 하나를 기다리기보다 1년 안에 여러 번 실험해 하나라도 제대로 건지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며 "작은 성공이 쌓여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데 우리는 실패 가능성이 보이면 시도 자체를 줄이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특히 실험 사업이 본사업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끊기는 현실을 문제로 들었다. 박 교수는 "AI는 50, 60, 70으로 점진적으로 성능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프로젝트가 단절되면 학습도 고도화도 멈춘다"며 "한 번의 완성형 사업보다 연결되는 실험 구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미국 국방부의 '제다이(JEDI)' 클라우드 사업을 사례로 제시했다. 해당 사업은 당초 마이크로소프트 단독 계약으로 추진됐지만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경쟁사의 반발 속에 중단됐다. 이후 여러 주요 클라우드 기업이 참여하는 '합동 전투원 클라우드 역량(JWCC)' 체계로 전환됐다. 박 교수는 "미국은 대형 프로젝트가 실패하거나 계획이 바뀌더라도 담당자를 문책하기보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며 "반면 우리 군은 프로젝트가 흔들리면 곧바로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강해 누구도 위험을 감수한 AI 실험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처음부터 100점짜리 완벽한 AI는 없다"며 "팔란티어 같은 글로벌 방산 AI 기업도 초기 정확도 50~60% 수준에서 출발해 미 국방부의 지원 속에 95%까지 끌어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작은 성공을 축적하는 방향으로 발상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 병목 해결할 '국방 AX 플레이그라운드' 절실 이 밖에도 박 교수는 국방의 특성상 보안은 필수지만, 지금의 체계는 긴 검토 기간과 과도한 책임 부담 때문에 혁신을 가로막는 '병목'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수한 IT·사이버 특기 장교들 역시 경직된 업무 환경 속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 대안으로 박 교수는 민간 기업이 군 내부 데이터를 활용해 자유롭게 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AI 전환(AX) 플레이그라운드' 조성을 제시하며 최근 논의되는 국방 AX 거점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면서도 실험과 검증이 가능하고 책임 소재와 판단 기준이 명확한 별도 공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군사 보안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를 이유로 데이터를 묶어두고 프로젝트를 멈춰 세운다면 어떤 발전도 이룰 수 없다"며 "실제 전장에서 의미 있는 양질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국내의 우수한 영상·클라우드·데이터 분석 기업들이 국방 생태계 안에서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과감히 판을 깔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국제 및 부처 간 공조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현직 시절 한미 간 정보화책임관(CIO)급 협의체인 '한미 ICT CC'를 구축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양국의 정권 교체와 잦은 인사 이동으로 실질적 네트워크를 지속하기 어려웠던 한계를 설명했다. 이어 사이버 위협 정보 공유와 대응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국정원, 과기정통부, 군 등 국내 기관 간 폐쇄적 칸막이를 없애고 실시간 공조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남희 교수는 "인구 절벽으로 인한 병력 감소와 드론·AI 기반의 비대칭 위협이 이미 현실화됐지만 똑똑한 젊은 장교가 여전히 소모적인 행정 보고서 작성에 파묻혀 있다"며 "에이전트 AI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이런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고 진짜 군사적 고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열어주는 것이 진정한 국방 AI 혁신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