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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 '깜빡깜빡' 기분 탓 아니네…에스트로겐이 뇌 회로 바꿨다

임신 중 방에 들어갔다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잊거나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 않는 경험을 하는 이유가 단순한 기분 탓만은 아닐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임신 중 크게 높아지는 에스트로겐이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과 연결된 특정 신경회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베일러의과대학과 루이지애나주립대 페닝턴 생의학연구센터, 중국 산둥대 등의 공동 연구진은 높은 수준의 에스트로겐이 기억력에 미치는 영향을 생쥐와 사람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불러틴'에 게재됐다. 임신 중 나타나는 건망증이나 인지 변화를 두고 '프레그넌시 브레인', '맘네시아' 등의 표현이 쓰인다. 방에 들어간 뒤 왜 왔는지 잊거나 물건을 엉뚱한 곳에 두고, 대화 도중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 놓치는 식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임신부 약 80%가 이 같은 변화를 경험한다고 보고한다. 다만 이 수치는 객관적인 인지검사 결과가 아니라 임신부들의 자기보고에 주로 기반한 것이다. 연구진은 임신 중 나타나는 지속적인 고농도 에스트로겐 환경을 재현한 생쥐 모델을 이용해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높은 수준의 에스트로겐에 노출된 생쥐에서는 일시적인 기억력 저하가 나타났다. 반면 기분과 관련된 행동이나 탐색 동기에는 뚜렷한 변화가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를 전반적인 인지능력 저하라기보다 기억과 관련한 특정 변화로 해석했다. 연구진이 주목한 곳은 뇌의 '외측 시상하부'와 기억 형성에 중요한 '해마'를 연결하는 신경회로였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지자 외측 시상하부에 있는 GABA성 뉴런의 활동이 증가했다. 이 뉴런들은 해마의 CA3 영역으로 신호를 보내는데, 활동이 지나치게 증가하면서 해마의 기능을 억제해 기억력 저하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스트로겐의 신호를 전달하는 '에스트로겐 수용체 알파(ERα)'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연구진이 생쥐의 시상하부 뉴런에서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유전적으로 제거하자 높은 에스트로겐이나 임신으로 나타났던 기억력 문제가 완화됐다. 특정 신경회로를 직접 조절하는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시상하부에서 해마로 이어지는 신경회로를 억제하자 높은 에스트로겐에 따른 기억력 저하가 나타나지 않았다. 반대로 에스트로겐 수치를 높이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 신경회로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자 기억력이 떨어졌다. 연구진은 사람에게서도 관련성을 살펴봤다. 임신 단계가 다른 여성과 임신하지 않은 여성을 포함해 총 70명을 대상으로 장·단기 기억과 작업기억 등을 검사했다. 그 결과 임신 후기 여성에게서 특정 기억 과제의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혈중 에스트로겐 농도가 높을수록 일부 기억 검사 성적이 낮은 경향이 관찰됐다. 다른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을 보정한 뒤에도 이러한 연관성이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그러나 생쥐 실험과 사람 연구의 결과를 동일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생쥐에서는 특정 신경회로를 직접 활성화하거나 억제해 에스트로겐과 기억력 저하 사이의 인과관계를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반면 임신부에게서는 뇌 신경회로를 직접 조작하거나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높은 에스트로겐과 기억력 변화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한 수준이다. 연구를 이끈 옌린 허 페닝턴 생의학연구센터 교수는 “임신부에게서 이 특정 신경회로를 직접 조작하거나 측정하지는 않았다”며 사람 대상 연구 결과가 생쥐에서 발견한 가설을 뒷받침하지만 동일한 수준의 인과관계를 확립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임신 중 나타나는 기억 변화가 지능이나 전반적인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임신 후기에 두드러질 수 있고 출산 후까지 이어질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일시적이고 특정 기억 기능에 국한된 변화라는 설명이다. 정상적인 수준의 에스트로겐은 오히려 인지 기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연구진은 낮은 수준에서 주기적으로 변하는 에스트로겐과 임신 중 장기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에스트로겐이 뇌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정 선 베일러의대 교수는 임신 중 나타나는 기억 변화에 대해 “임신이 단순히 사람을 덜 똑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며 “특정 인지 과제에 나타나는 보다 미묘하고 선택적인 영향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026.09.27 06:46안희정 기자

외로우면 왜 술 찾을까…생쥐 뇌 들여다봤더니

사회적으로 고립된 수컷 생쥐가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되는 데 특정 뇌 회로가 관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같은 조건에서도 암컷 생쥐는 오히려 술을 덜 마셔, 외로움과 음주를 연결하는 뇌 반응이 성별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솔크연구소와 노스웨스턴대학교에 따르면 연구진은 사회적 고립이 음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확인했다.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이날 공개됐다. 연구진은 성체 수컷과 암컷 생쥐를 여러 마리가 함께 생활하도록 한 뒤 일부를 혼자 생활하게 해 사회적 고립 상황을 만들었다. 이후 매일 한 시간 동안 물과 알코올 농도 15% 용액 중 원하는 것을 마실 수 있도록 하고 약 2주간 섭취량을 추적했다. 그 결과 수컷 생쥐는 혼자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알코올 섭취량이 점차 늘었다. 약 일주일 뒤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 뒤 증가한 상태가 유지됐다. 반면 암컷 생쥐는 사회적으로 고립됐을 때 알코올 섭취량이 감소했다. 물 섭취량은 주거 조건에 따른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런 차이를 만드는 뇌 회로를 찾기 위해 편도체와 전전두피질에 주목했다. 특히 감정과 스트레스 정보를 처리하는 '기저외측 편도체(BLA)'에서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내측 전전두피질(mPFC)'로 이어지는 신경 경로의 활동을 분석했다. 수컷 생쥐에서는 사회적 고립 뒤 이 회로의 흥분성이 높아졌고, 알코올 섭취량이 많을수록 해당 회로의 활동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암컷에서는 반대로 회로의 흥분성이 낮아졌다. 연구진은 성별에 따라 같은 사회적 고립이 서로 반대 방향의 신경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해석했다. 이 회로가 단순히 음주 행동과 함께 활성화되는 것인지, 실제로 술을 더 마시게 만드는지도 실험했다. 연구진이 빛으로 특정 신경세포의 활동을 조절하는 '광유전학(optogenetics)'을 이용해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은 수컷 생쥐의 편도체-전전두피질 회로를 활성화하자 알코올 섭취가 증가했다. 반대로 혼자 생활하는 수컷 생쥐에서 같은 회로를 억제하자 음주량이 줄었다. 사회적 고립은 전전두피질이 보상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줬다. 고립된 수컷 생쥐에서는 알코올에 대한 전전두피질의 반응이 커진 반면, 설탕물과 같은 자연적인 보상에 대한 반응은 감소했다. 연구진이 편도체-전전두피질 회로를 인위적으로 자극했을 때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다. 리샤 파텔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사회적 고립이 수컷에서 알코올 사용 증가를 일으키는 구체적인 뇌 회로를 확인한 첫 연구"라며 "외로움과 관련된 음주 문제를 이해하고 향후 치료 표적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연구 결과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연구는 생쥐를 여러 마리와 함께 생활시키다가 혼자 두는 방식으로 사회적 고립을 구현했다. 사람이 느끼는 외로움이나 사회적 관계의 복잡성을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 또 연구진은 암컷 생쥐에서 알코올 섭취가 감소한 정확한 원인을 아직 규명하지 못했다. 이후 뇌 회로를 조작해 인과관계를 확인하는 실험도 주로 수컷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따라서 '외로운 남성은 술을 더 마시고 여성은 덜 마신다'는 식으로 사람에게 일반화할 수 없다. 연구진은 앞으로 사회적 고립이 왜 이 회로를 과도하게 활성화하는지, 성별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데 호르몬이나 다른 신경회로가 관여하는지 등을 추가로 연구할 계획이다. 사람에게도 비슷한 뇌 메커니즘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것 역시 후속 과제로 남아 있다.

2026.08.27 08:32안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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