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차전지 특화산단 지정, 민간투자 산정 무리수였나?
정부는 지난 29일 인허가 패스트트랙과 용적률 완화, 세제혜택 등을 골자로 한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을 발표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와 이차전지 기업 포스코퓨처엠, LG화학, 에코프로 등이 공장을 신설하기로 한 지자체 4곳을 이차전지 특화 지역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청주, 새만금, 포항, 울산을 이차전지 각 특성에 맞는 거점으로 키우고 이차전지 전 공급망을 국내에서 완결해 미래 수요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함께였다. 이를 통해 오는 2030년까지 약 30조원 이상의 민간 투자를 촉발시키겠다는 담대한 계획이다. 해당 사업을 기획한 정부의 취지도 좋았다. 기업은 돈을 투자하고 정부는 행정적 혜택을 제공해 생태계와 인프라 조성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데 여론도 호응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기획 취지도, 정부의 행정적 제공도, 업계의 반응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해당 사업은 정말 완벽했을까. 정부가 발표한 투자 내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를 포함해 약 614조원의 민간투자를 추진한다고 했다. 이 중 이차전지만 30조1천억원에 달하는 투자다. 기자는 기업이 투자하기로 한 금액 산정이 어떤 기준에서 나왔는지 궁금했다. 해당 사업을 기획한 산업통상자원부 측은 기업이 이미 기발표한 금액과 지자체가 제출한 투자금액을 합산해 산정했다고 답했다. 예를 들어, 이차전지 특화단지 중 새만금의 경우 2027년까지 6조4천억원의 민간투자가 예정돼 있는데 이 금액엔 지난 3월 SK온과 에코프로, 중국의 거린메이가 새만금에 1조2천억원을 투자를 하기로 한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이 외엔 모두 기업 기밀에 해당돼 산정 기준을 밝힐 수 없다는 애매한 답이 돌아왔다. 문제는 현재 이차전지와 관련한 내용이 전혀 발표되지 않은 울산이었다. 정부는 울산을 이차전지 포트폴리오(LFP, 전고체 등) 다변화 거점으로 지정해 7조2천억원의 민간 투자를 촉발하겠다고 했다. 산업부는 삼성SDI가 울산에 대단위 투자를 결정한 것처럼 기재했다. 그러나 정작 삼성SDI는 울산과 이차전지 투자와 관련해 그 흔한 업무협약(MOU)도 체결하지 않은 상태다. 삼성SDI 관계자 역시 "울산 투자와 관련한 사항은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고 전했다. 만일 삼성SDI 내부적으로 투자가 결정됐다 해도 산업부 측의 해명처럼 기업 기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정책 홍보에 이용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반대로 정부가 확정되지 않은 사항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발표했다면 부담을 느끼지 않을 기업이 어디에 있을까. 이같이 장황한 글을 쓴 건 다름 아니다. 현재 배터리 업계는 공장 증설을 위한 재원조달과 글로벌 공급망 선점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떠안고 있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에서만 8곳의 공장을 동시에 증설하며 대규모 재원 마련에 애쓰고 있다. 정부가 기업의 고심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책 홍보를 위해 마치 투자가 결정된 것처럼 발표한 것은 결국 기업에 부담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이차전지 산업을 육성해야 함은 마땅하다. 다만 목적이 정당하다고 수단을 무시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