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빙하 밑 미생물, 산소 농도 따라 에너지원 활용…특이 생존법 '눈길'
한미 연구진이 서남극 빙하아래 메르세르 빙저호에서 수천 년 간 외부와 단절된 채 진화한 미생물을 처음 발견하고 대사 체계를 분석해 관심이다. 19일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김옥선 박사 연구팀은 미국 몬태나 주립대학교 존 프리스쿠(John Priscu)교수, 플로리다 대학교 브렌트 크리스트너(Brent Christner) 교수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과 서남극 1,087m 두께의 빙하 아래에 있는 메르세르 빙저호를 탐사, 이 같은 성과를 확보했다. 빙저호는 남극과 북극의 두꺼운 빙하 아래 존재하는 호수다. 고립된 환경에서 장기간 독특한 진화를 겪기 때문에 과학적 가치가 높다. 그러나 막대한 탐사 비용과 기술적 난이도 탓에 온전한 시료 확보 사례는 극히 드물다. 탐사는 미국팀 주도로 2018-19년 이뤄졌다. 분석은 김옥선 박사 연구팀이 주도했다. 청정 열수시추(hot-water drilling) 기술을 이용해 오염 없이 빙저호 시료를 확보한 것은 2013년 윌란스 빙저호 이후 인류 역사상 두 번째이다. 메르세르 빙저호에서 확보한 1,374개의 단일세포 유전체 분석 결과, 해양· 지표 미생물과 유전적으로 고립된 새로운 종이 발견됐다. 이들은 산소 농도에 따라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살아 남은 것으로 파악됐다. 극지연구소 황규인 박사는 “대사적 유연성이 암흑·저영양·고압의 환경에서 미생물들이 수천 년간 생존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황 박사는 "앞서 시료를 확보했던 윌란스 빙저호에서 예상외로 다양한 미생물이 발견된 이후, 메르세르 빙저호에서 찾은 시료는 한 단계 더 진전된 것"이라며 "단일세포 유전체 분석은 한국팀 제안으로 시작됐으며, 빙저호 연구를 한층 끌어올린 성과"로 평가했다. 이번 성과는 남극의 초극한 환경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적응, 진화하는지 규명했을 뿐 아니라, 얼음 아래 바다가 존재하는 유로파(Europa), 엔셀라두스(Enceladus) 등 외계 천체의 생명 가능성 연구에도 기초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됐다. 이번 연구는 극지연구소와 미국 과학재단 SALSA(Subglacial Antarctic Lake Scientific Access) 프로젝트 지원으로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티케이션즈(8월)에 게재됐다.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은 “우리 연구팀의 아이디어와 미국의 탐사 기술이 만나 거둔 성과”라며, “남극에는 아직도 인간이 접근하지 못한 600여 개의 빙저호가 존재한다. 국제 협력을 강화해 미지의 극지 생태계를 개척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