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최태원, '슈퍼을' ASML 방문…차세대 EUV 장비 확보 총력
네덜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과 함께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 본사를 방문할 예정이다. 메모리 반도체 1위이자 파운드리 2위인 삼성전자와 메모리 2위인 SK하이닉스를 이끄는 기업 총수가 대통령과 함께 반도체 장비 업체를 방문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1일(이하 현지시간)부터 3박 5일간 네덜란드에 국빈방문하고 있는 윤대통령은 이튿날인 12일 오후 이재용 회장, 최태원 회장과 함께 네덜란드 남동부 벨트호벤에 있는 ASML 본사를 방문해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와 면담하고, 클린룸을 둘러볼 예정이다. 클린룸은 반도체 또는 장비를 생산하는 장소로, 내부를 오염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이 제한된 곳이다. ASML이 반도체를 생산하는 '클린룸'을 외국 정상에게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곳을 공개한다는 것은 한국과 협력 강화에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슈퍼 을' ASML, 전세계서 EUV 장비 유일하게 공급…줄서서 받는다 전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2위인 ASML은 극자외선(EUV) 장비를 유일하게 공급하는 기업으로 '슈퍼 을(乙)'로 불린다. EUV 노광 장비는 극자외선으로 반도체에 회로를 새기는 기술로 7나노 이하 미세공정, 고용량, 저전력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핵심 장비로 꼽힌다. 올해 일본 반도체 장비 업체 캐논이 가성비를 앞세운 EUV 장비를 출시했지만, 실제 미세공정 칩 생산에 장비를 공급한 사례는 ASML이 유일하다. ASML이 공급하는 EUV 장비는 1대당 최소 2천억 원에 이르며, 1년에 생산할 수 있는 수량이 40여대 수준에 불과하다. 주문부터 도착까지 1년~1년 반 가량 소요된다. 그나마 ASML이 EUV 공급량을 늘리려고 노력한 끝에 올해 3분기까지 공급한 누적 장비는 40대(1분기 17대, 2분기 12대, 3분기 11대)에 달하고, 연말까지 포함하면 50대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삼성전자, TSMC, 인텔 등은 EUV 장비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ASML에 줄 서서 EUV 장비를 공급받아야 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번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총수가 직접 나서서 ASML을 방문하는 것도 EUV 장비를 원활하게 확보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기준 ASML 전체 매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9%로 대만(38%)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에서 국가별 비중에서도 한국(24.3%)은 대만(35%) 보다 낮다. 매출에는 EUV 장비뿐 아니라 다른 장비도 포함되지만, 이는 ASML이 한국 보다 대만에 장비를 더 많이 팔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와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EUV 장비 확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의 ASML 본사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이고, 최 회장은 첫 방문이다. 앞서 이재용 회장은 EUV 반도체 장비를 직접 확보하기 위해 2020년 10월 ASML 본사를 방문한 데 이어 2022년 6월에도 방문해 협력 확대를 논의한 바 있다. 같은해 11월에는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의 공식 방한에 베닝크 CEO가 동행했는데, 이때 이 회장과 최태원 회장이 차담회에 동석해 반도체 협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미세화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0년대부터 반도체 제조 공정과 장비 개발 분야에서 ASML과 협력했고, 2012년 ASML 지분 투자를 통해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 ASML 신규 '하이 NA' 장비 내년 말부터 공급…2나노 경쟁서 확보 필수 ASML이 내년 말에 차세대 장비로 하이 NA EUV 장비 '트윈스캔 EXE:5200'을 출시할 예정인 가운데 파운드리 업계에서 신형 EUV 장비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시중에 출시된 가장 고사양 장비인 '트윈스캔 EXE:3600D' 장비가 3나노, 5나노 공정에 사용된다면, '트윈스캔 EXE:5200'은 2나노 이하 공정에서 사용되는 장비다. 또 개구율도 0.33NA(노광렌즈수차)에서 0.55NA로 항상된다. EXE:5200 가격은 1대당 5~6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 경우 2나노 양산을 위해서라도 하이 NA EUV 장비를 선제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는 2022년 3나노 공정 생산에 이어 2025년 2나노 공정 생산, 2027년에는 1.4나노 공정을 칩을 생산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경쟁사인 TSMC도 2025년 2나노, 파운드리 시장에 재진출한 인텔도 2024년 20A(2나노급) 공정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3사의 하이 NA EUV 장비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ASML EXE:5200 장비는 인텔이 가장 먼저 주문해서 2025년부터 18A 공정에서 활용될 예정이다. 이후 TSMC와 삼성전자도 ASML에 하이NA EUV 노광기를 주문했으나, 2027년까지 배정된 20대쯤의 물량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관측된다. SK하이닉스도 2021년부터 D램 생산라인에 EUV 기술을 적용해서 칩을 생산함에 따라 ASML과 협력을 중요시하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태스크포스(TF)팀으로 운영해 오던 EUV 전담팀을 올해부터 상설 조직으로 운영하는 등 EUV 기술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이번 네덜란드 출장을 통해 양국은 반도체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윤 대통령은 13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의 회담과 업무 오찬에서도 반도체 관련 협력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7일 브리핑을 통해 "이번 방문을 계기로 네덜란드 첨단 장비와 한국의 첨단 제조 역량을 결합해 반도체 가치사슬의 상호보완성을 극대화하고자 한다"라며 "정부, 기업, 대학을 아우르는 '반도체 동맹' 구축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