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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빈 교수의 AI와 윤리②/존재론] 나를 닮은 AI는 또 다른 '나'인가?

1. 디지털 자아의 출현: '나'의 외주화는 가능한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인공지(AI)는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도구'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사람의 말투를 따라 하고, 이미지를 그리며, 나아가 판단과 감정의 표현까지 흉내 내는 존재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은 여전히 통계적 패턴 처리와 확률적 예측이다. 인간 존재의 전체 구조를 그대로 옮겨 심은 어떤 '대체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데드봇(Deadbot)', 이른바 '그리프봇(Griefbot)' 등장은 기술과 죽음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게 만든다. 이 시스템은 고인이나 반려동물의 음성, 영상, 대화 기록, SNS 게시물 같은 디지털 흔적을 학습해, 가상 공간에 하나의 인격적 초상을 그려낸다. 가족에게 “오늘 하루는 어땠어?”라고 말을 건네고, 생전에 즐겨 하던 농담을 비슷한 맥락으로 되살리며, 남겨진 글과 발언을 바탕으로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까지 제시한다. 말 그대로 '부재하는 존재'와 나누는 대화를 시뮬레이션하는 셈이다. 일부 유가족은 이 챗봇과의 대화를 통해 심리적 위안을 얻었다고 말하는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이것이 고인을 실제로 되살린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큰 혼란을 느꼈다”고 고백한다(Xygkou et al., 2023). 비슷한 흐름은 산업 현장의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에서도 관찰된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의 설비나 공정, 조직을 가상 공간에 구현하고, 센서와 네트워크를 통해 일정한 주기와 정밀도로 상태를 동기화하는 기술이다. 고급 분석 기법,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이 결합하면서, 디지털 트윈은 이제 데이터를 보여주는 모니터를 넘어 의사결정을 돕고, 일부 영역에서는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시스템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Milosevic & Van Schalkwyk, 2023).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여러 디지털 트윈을 엮어 공장 전체, 도시 전체를 시뮬레이션하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그 결과, 현실과 가상이 촘촘히 겹쳐지는 새로운 기술 환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흐름은 결국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으로 수렴한다. “AI가 나의 말투, 기호, 과거의 선택 패턴을 고도로 정교하게 재현할 수 있을 때, 그 디지털 존재는 어디까지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기술 효율성의 문제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디지털 자아(digital self)와 인격적 동일성(personal identity)이라는 철학의 오래된 난제를, 오늘의 데이터 시대라는 구체적 환경 속으로 다시 소환한다. 2. 테세우스의 배와 업로딩된 영혼: 동일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고대부터 논의되어 온 '테세우스의 배(Ship of Theseus)' 역설은, 모든 부품이 조금씩 교체된 배를 여전히 같은 배로 볼 수 있는지 묻는다. 이 사고실험은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 인간과 유사한 AI의 동일성을 사유하기 위한 강력한 비유적 틀을 제공한다. 한 인간의 동일성을 논할 때, 우리는 통상 육체와 정신이라는 두 축을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로 상정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한 존재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게 하는 핵심 조건 가운데 하나인 생물학적 신체는 잠시 괄호에 넣어 두고, 반응과 행위로 드러나는 정신에 초점을 맞춰 보려 한다. 한 사람을 가정해 보자. 그는 생의 말기에 자신의 대화 습관, 고민의 양상, 가족과의 추억, 가치관과 신념을 질문–응답 형식의 데이터로 남기고, 이를 특정 AI 시스템에 충분히 학습시킨다. 이후 이 시스템은 고인의 음성을 합성해 가족에게 “오늘 하루는 어땠어?”라고 안부를 묻고, 고인이 평생 즐기던 농담을 비슷한 맥락에서 되살려 말할 수 있다. 나아가 정치적 견해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고인이 남긴 저서와 논문, 기사에 담긴 입장을 토대로 일정한 방향의 판단을 제시한다. 이때 질문은 분명해진다. 이 AI는 고인의 인격과 삶의 연속선상에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고인을 통계적으로 모사한 정교한 장치에 불과한가? 이 상황은 자연스럽게 영화 '트랜센던스'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 윌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의식을 컴퓨터로 업로딩하고, 이후 디지털 환경 속에서 부활한 듯 아내와 친구에게 말을 건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현상을,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윌이라는 동일한 인격이 계속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해도 되는가? 트랜스휴머니즘을 옹호하는 일부 사상가들, 예를 들어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과 같은 인물은 인간의 핵심을 정보 패턴으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이 정보 패턴을 충분히 정밀하게 추출해 기계 시스템에 업로드할 수 있다면, 일종의 '개인의 지속' 또는 '디지털 영속성'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인간의 내적 경험과 의식을 지나치게 '정보 구조'로만 환원한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의식과 의미를 단순한 데이터 구조와 연산 규칙으로 치환할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존 설(John Searle)의 '중국어 방(Chinese Room)' 사고실험은, 특정 기호에 규칙적으로 적절한 반응을 생성하는 시스템과 그 기호의 의미를 실제로 이해하는 주체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강조한다. 규칙에 따른 입·출력의 적절성이 곧 의미 이해나 의식 경험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적당한 답변의 제공은 그것이 곧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음에 대한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가 어떤 개인의 말투와 반응 패턴을 매우 정교하게 흉내 내더라도, 그 내부에 '누가 경험하고 있는지', '누가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지'를 가리키는 주체가 존재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필자는 이러한 디지털 복제물을 나의 표면적 흔적을 빌려 작동하는 일종의 '시뮬라크르(simulacrum)'로 이해한다. 곧, 그것은 나를 닮은 이미지이자 모사이지만, 존재론적 의미에서의 '나' 자체, 또는 독자적인 존재론적 주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3. 신체가 없는 자아는 가능한가: 신경과학이 밝힌 존재의 층위 AI가 인간을 존재론적 차원에서 대체하기 어렵다는 직관은 현대 뇌신경과학과 인지과학 연구를 통해 한층 구체적인 근거를 얻는다. 특히 '체화된 자아(embodied self)'를 강조하는 연구들은, 자아와 의식, 감정이 단순히 뇌 속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전체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자율신경계의 활동, 심장 박동과 호흡, 내장 감각과 같은 신체 내부 상태의 조절 과정이 감정 형성과 의사결정, 그리고 자아 감각의 형성에 핵심적인 토대를 제공한다고 주장해 왔다. 우리는 예를 들어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심장이 빨리 뛰고 손에 땀이 나는 신체적 경험과 함께 "긴장된다"는 감정을 인식한다. 즉, 몸의 상태 변화는 단순한 부수적 반응이 아니라 감정과 자아 체험의 구성 요소이다. 현재의 AI 시스템은 센서 데이터를 이용해 심박수나 호흡을 측정하고 이를 시뮬레이션하는 모델을 구성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수치 변화가 '나의 긴장', '나의 두려움'으로 체험되는 것과 같은 주관적 경험, 곧 '살아낸 감정'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순 계산이나 확률 출력과 구분되는 층위다. 프랑스 현상학자 메를로-퐁티(Merleau-Ponty) 역시 인간의 인지를 세계와 분리된 '머리 속 계산'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인지는 몸이 세계와 만나는 사건, 즉 지각과 행동, 몸의 방향성과 리듬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Merleau-Ponty, 1945; Merleau-Ponty, Landes, Carman, & Lefort, 2013).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자아는 특정한 신체를 통해 공간과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세계를 '살아내는' 과정의 산물이다. 현재의 디지털 시스템은 이러한 실질적인 체화와 생리적 유한성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따라서 AI가 생성하는 문장, 표정, 목소리는 인간에게 매우 자연스럽고 위로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부에 감각과 정동을 가진 주체가 없는 '느낌이 없는 출력'으로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AI의 위로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이 존재가 나를 진짜로 알고, 나를 위해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직관은 신체화된 자아가 지닌 진실성—몸과 시간, 관계 속에서 축적된 삶의 무게—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4.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 관계는 재현될 수 있는가 존재론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윤리의 문제로 이어진다.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관계의 본질, 특히 타자와의 윤리적 관계가 재현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 때문이다.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타자의 '얼굴'을 나에게 무한한 책임을 요청하는 윤리적 신호로 이해했다(Levinas, 1969). 타자의 연약함과 상처, 침묵과 호소는 나를 단순한 인지적 주체가 아니라 책임지는 윤리적 주체로 부른다. 여기에서 '얼굴'은 단지 시각적 형상이 아니라 고통받고 기뻐하는 타자의 '현존' 전체를 가리킨다. 오늘날의 기술로 AI에게 얼굴을 부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상의 아바타는 표정과 시선을 정교하게 모사하고, 음성 합성 기술은 따뜻한 어조와 억양을 흉내 낸다. 그러나 그 얼굴 뒤에는 실제로 고통을 느끼는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스템은 타자의 신음에 도덕적 부담을 느끼거나 책임을 자발적으로 떠안는 주체가 아니다. 예를 들어, 노년층 돌봄을 위해 설계된 AI가 "제가 곁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때, 그 문장은 외형상 다정하고 안정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상대의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타인의 취약함을 마주함으로써 스스로 상처받는 주체도 아니다. 이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관계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고통과 책임, 상호 취약성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인간관계가 지닌 깊이에 도달하지 못한다. 5. 융의 페르소나와 그림자: AI가 보지 못하는 인간의 또 다른 절반 현대의 생성형 AI는 인간을 '학습'할 때, 주로 디지털 환경에 남겨진 표면적 흔적을 이용한다. SNS에 게시된 사진과 글, 업무 이메일에 드러난 전문성, 인터뷰나 강연에서 사용된 인상적인 문장들이 대표적이다. 말하자면, 사회적 무대에 제시된 '앞면'의 자아, 곧 페르소나(persona)를 중심으로 학습하는 셈이다. 칼 융(Carl G. Jung)은 인간의 진정한 성숙이 페르소나와 그림자(shadow)의 통합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Jung, 1959). '그림자'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두려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질투와 공격성, 과거의 상처, 모순된 욕망, 그리고 당사자 자신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충동의 층위를 포함한다. 이 영역은 종종 드러내기 꺼려지거나 무의식 속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데이터 기반 AI가 이러한 그림자 영역을 직접적으로 학습할 수 있을까? 표현되지 않은 두려움이나, 말로 남겨지지 않은 상처, 의식화되지 않은 욕망은 데이터셋에 포함되지 않으며, 설령 일부 단서가 간접적으로 드러나더라도 그것이 가진 전체적인 맥락과 체험적 의미를 그대로 재구성하기는 근본적으로 제한적이다. 통계적 모델은 행동 패턴으로부터 특정 성향을 추정할 수는 있지만, 인간이 자기 삶을 반성하고 수용해 가는 내적 통합의 과정 자체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AI가 어떤 사람을 매우 설득력 있게 흉내 내더라도, 그것이 포착하는 것은 '내가 대외적으로 보여준 나'의 정제된 버전에 가깝다. 이 디지털 초상은 유용한 요약이 될 수는 있지만, 인간 존재 전체, 특히 상처와 모순, 성장과 후회가 엮여 있는 총체적 자아를 완전히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기술이 우리를 대체한다는 공포나 기술이 우리를 완성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넘어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가 닮을 수 없는 인간의 고유성은 무엇인가? 나의 제안은 이렇다. 불완전함에서 시작되는 성찰, 유한성에서 태어나는 책임, 상처에서 우러나는 공감,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 존재의 미묘한 결이다. 문득 초등학생 시절 나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었던 윤동주의 '서시' 한 구절이 귀가를 맴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중략)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우리는 완전히 재현될 수 없기에, 존재한다. 그리고 존재하기 때문에, 존엄하다. ◆ 참고문헌 -Jung, C. G. (1959). Aion: Researches into the phenomenology of the self (R. F. C. Hull, Trans.). Princeton University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951) -Levinas, E. (1969). Totality and infinity: An essay on exteriority (A. Lingis, Trans.). Duquesne University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961) -Merleau-Ponty, M. (1945). 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Éditions Gallimard. Merleau-Ponty, M. (2013). Phenomenology of perception (D. A. Landes, Trans.). Routledge. (Original work published 1945) -Milosevic, Z., & Van Schalkwyk, P. (2023, October). Towards responsible digital twins. In International Conference on Enterprise Design, Operations, and Computing (pp. 123–138). Springer Nature Switzerland. -Xygkou, A., Siriaraya, P., Covaci, A., Prigerson, H. G., Neimeyer, R., Ang, C. S., & She, W. J. (2023, April). The “conversation” about loss: Understanding how chatbot technology was used in supporting people in grief. In Proceedings of the 2023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pp. 1–15). ◆12회 연재 순서 1회(왜 지금, AI 윤리인가?): 디지털 야누스 앞에 선 인류 2회(존재론): 나를 닮은 AI는 또 다른 '나'인가? 3회(감정): 기계가 '감정'을 이해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4회(몸과 관계): AI는 인간의 친밀성과 관계성까지 대체할 수 있는가? 5회(판단): 자율주행차의 도덕적 결정은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6회(창작): 생성형 AI의 창작은 '창작'인가, 변형인가? 7회(진실성):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닐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8회(공정): 알고리즘은 왜 중립적이지 않은가? 9회(프라이버시와 정신적 자유): 생각이 데이터가 될 때, 자유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10회(인간 증강과 미래): 인간을 '업그레이드'한다는 말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11회(책임) AI가 사고를 치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12회(공존과 인간 번영): AI 시대,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2025.12.06 15:30박형빈

[박형빈 교수의 AI와 윤리①] '디지털 야누스' 앞에 선 인류

인공지능(AI)와 윤리에 천착하고 있는 박형빈 서울교육대학교(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지디넷코리아에 '박형빈 교수의 AI와 윤리'를 주제로 매주 1회, 총 12회 연재한다. 이번 연재에서 박 교수는 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발전 속에서 균형, 성찰, 실천이라는 세 가지 핵심 가치를 지향한다. 기술이 가져오는 편의와 효용을 충분히 인정하되, 그에 수반되는 윤리적 부채를 냉철하게 검토해 치우침 없는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한다. 단순히 기술적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를 넘어, 우리 사회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묻는 깊이 있는 '성찰'을 요구한다. 나아가 이러한 논의가 추상적인 철학적 논쟁에 그치지 않게 딥페이크, 자율주행,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등 구체적인 기술 사안에 적용 가능한 실질적 판단 기준을 제시, '실천'을 도모한다. 박 교수는 AI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야누스(New Janus)'라 말한다. 챗GPT와 딥페이크 등장은 혁신의 문을 열었지만, 동시에 통제 불가능한 위험의 문도 함께 열었는 것이다. 이번 연재는 기술적 비관론이나 맹목적 낙관론을 넘어, '인간다움'과 '기술'의 상생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실천적 해법을 모색한다. AI 윤리와 교육적 통찰을 바탕으로, 독자들이 AI에 대한 막연한 맹신이나 두려움을 '지혜로운 활용 역량'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궁극적으로 온 국민의 디지털시민성과 AI 리터러시 역량 강화에 방점을 둔다. [편집자 주] ◆12회 연재 순서 1회(왜 지금, AI 윤리인가?): 디지털 야누스 앞에 선 인류 2회(존재론): 나를 닮은 AI는 또 다른 '나'인가? 3회(감정): 기계가 '감정'을 이해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4회(몸과 관계): AI는 인간의 친밀성과 관계성까지 대체할 수 있는가? 5회(판단): 자율주행차의 도덕적 결정은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6회(창작): 생성형 AI의 창작은 '창작'인가, 변형인가? 7회(진실성):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닐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8회(공정): 알고리즘은 왜 중립적이지 않은가? 9회(프라이버시와 정신적 자유): 생각이 데이터가 될 때, 자유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10회(인간 증강과 미래): 인간을 '업그레이드'한다는 말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11회(책임) AI가 사고를 치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12회(공존과 인간 번영): AI 시대,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 인공지능이 쏘아올린 노벨상 2024년 가을, 스톡홀름과 오슬로에서 전해진 노벨상 발표는 인공지능(AI)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재규정한 사건이었다. 노벨 위원회는 더 이상 AI를 '산업계의 유망 기술' 정도로 보지 않았다. 물리학과 화학이라는 기초과학의 최정점을 AI 연구자들에게 안긴 것이다. 노벨 물리학상은 인공 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s)과 머신러닝의 이론적 기반을 닦은 존 J. 홉필드(John J. Hopfield)와 제프리 E. 힌튼(Geoffrey E. Hinton)에게 돌아갔다. 홉필드는 1982년 '홉필드 네트워크(Hopfield Network)' 제안, 불완전한 정보에서도 패턴을 복원할 수 있는 연상 기억 모델 개발, 뇌의 정보 처리 방식의 물리학적 정식화 등을 통해 AI의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힌튼은 딥러닝(deep learning)의 창시자로 불리며, 역전파(backpropagation) 알고리즘을 발전시켜 신경망 학습의 핵심을 제공하고 오늘날 대형 언어 모델과 이미지 생성 모델의 기반을 닦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학자의 연구는 오늘날 대형 언어 모델과 이미지 생성 모델의 근간이 되는 연결주의적 계산 모델을 물리학과 수학의 언어로 정식화한 작업으로 평가된다. 한편, 노벨 화학상은 단백질 구조 예측과 설계에 인공지능을 도입해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세 연구자에게 돌아갔다.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는 AI와 계산 과학을 결합한 계산적 단백질 설계(computational protein design)를 개척했고,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와 존 점퍼(John Jumper)는 딥마인드(DeepMind)의 AI 시스템 알파폴드(AlphaFold)를 통해 50년 난제로 불리던 단백질 3차원 구조 예측 문제를 사실상 해결했다. 한 해에 물리학상과 화학상이 모두 AI 관련 연구에 수여된 것은 통계적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이는 인공지능이 기초과학의 핵심 방법론이자, 신약 개발과 바이오 연구의 필수 도구이며, 안보·금융·에너지·물류를 관통하는 문명 인프라가 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과학의 성소(聖所)라 불리는 노벨상이, 이제 알고리즘을 제단 위에 올려놓은 셈이다. ■ 영광과 후회가 한 자리에...AI 대부가 꺼낸 실존적 질문 그러나 이 영광의 중심에 선 인물 중 한 명인 제프리 힌튼은, 축배 대신 경고를 선택했다. 힌튼은 2018년 튜링상 공동 수상자로 '딥러닝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AI 혁명을 이끈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2023년 구글을 떠난 뒤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이 공헌한 기술이 인류에게 '실존적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거듭 경고했다. 악의적인 오용, 여론 조작과 정보전, 노동시장 붕괴, 그리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고도 AI의 출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우려했다. 일부 인터뷰에서는 앞으로 수십 년 안에 AI가 인류에게 치명적 위협이 될 확률을 추산하기도 했다. 자신이 쌓아 올린 지적 건축물이 인류의 안녕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노학자의 불안과 부분적 '후회'는, 노벨상이라는 최고 영예와 기묘한 불협화음을 이룬다. 한 인물 안에 기초과학과 산업 혁신의 선구자, 동시에 그 기술의 위험을 가장 강하게 경고하는 내부 비판자의 얼굴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오늘의 인공지능은 로마 신화의 두 얼굴 신 야누스(Janus)를 떠올리게 한다. 한 얼굴은 암 치료와 신약 개발, 에너지 효율, 교육 혁신을 약속하지만, 다른 얼굴은 정보 조작, 대규모 감시, 통제 불가능한 시스템, 민주주의의 위기를 응시하고 있다. 과학의 성소에 당도한 야누스가 바로 지금의 AI다. ■ '도덕적 AI'라는 말이 조용히 숨기는 가정들 이 불안과 기대 사이에서, 기술 업계와 정책 영역은 '신뢰할 수 있는 AI(Trustworthy AI)', '책임 있는 AI(Responsible AI)'라는 구호를 앞세운다. 편향을 줄이고, 설명 가능성을 확보하고, 프라이버시와 안전성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은 타당하다. 문제는, 이 담론이 종종 말하지 않고 전제하는 것이다. '도덕성은 충분히 모델링 가능한 대상이며, 규칙과 데이터를 정교하게 설계하면 AI도 인간처럼 도덕적 판단을 수행할 수 있다. 현재의 대형 언어 모델은 혐오 발언을 차단하고, 자해·범죄·테러를 조장하는 요청을 거부하며, 위험한 질문에 경고 메시지를 출력하도록 설계된다. 겉으로 보면 AI가 마치 우리 대신 '올바른 선택'을 내려주는 존재처럼 보인다. 이 지점에서 논의는 쉽게 '어떻게 하면 더 도덕적인 AI를 만들 것인가'라는 기술·정책 설계 문제로 수렴한다. 그러나 윤리학, 도덕심리학, 신경윤리학의 연구는 인간의 도덕성이 사회적으로 학습된 규범과 규칙, 공감·분노·수치심 같은 정서적 반응, 개인의 경험과 관계 맥락, 몸의 생리적 반응과 직관이 뒤섞인 복합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인간은 계산적으로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약속을 지키고,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나중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도덕적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복잡한 도덕 경험을 '충분히 많은 데이터와 정교한 규칙'으로 기계에 이식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학문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 알고리즘의 '양심'은 출력일 뿐, 경험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현재의 AI가 하는 일은 도덕적 실천이라기보다 '도덕 규칙의 통계적 모사'다. 모델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하고, 사람이 설계한 규칙과 보상 구조에 따라 어떤 응답은 억제하고, 어떤 응답은 강화하도록 조정된다. 그 결과, 시스템은 '그렇게 말하는 편이 안전하고 바람직하다'고 학습했기 때문에 '이 행위는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 어디에도 죄책감, 부끄러움, 연민, 책임감 같은 내적 정동(affect)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덕적 AI'라는 표현을 정확하게 풀어 쓰면, '도덕 규범을 일정 부분 구현·시뮬레이션하도록 설계된 AI' 정도가 된다. 여기에 '양심'이라는 단어를 얹는 순간, 우리는 알고리즘적 규칙과 출력, 인간의 도덕 경험과 책임을 섣불리 동일시하게 된다. AI는 지금으로서는 '도덕적으로 보이도록 설계된 도구'이지, 도덕적 주체가 아니다. 이 구분이 무너지면, 책임의 경계도 함께 흐려진다. 기계가 주체가 될 수 없을 때, 책임은 더 날카롭게 인간에게 돌아온다. 이 지점에서 역설적인 결론 하나가 도출된다. 'AI가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AI 윤리는 더 절박해진다.'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을 때, 얼굴 인식 알고리즘이 특정 집단을 반복적으로 오분류해 차별적 결과를 낳았을 때, 혹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가 신경 신호를 대규모로 수집·분석해 오남용 위험을 낳았을 때,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은 코드가 아니라 인간이다. 어떤 가치와 우선순위를 기준으로 알고리즘의 목표 함수를 설계했는가. 어떤 데이터를, 어떤 동의 절차를 거쳐 수집·사용하기로 했는가. 예상되는 피해와 위험을 줄이기 위해 어떤 내부 통제와 외부 감시 장치를 마련했는가. 실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책임과 배상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모두 기술 바깥의 문제다. 법철학, 정치철학, 과학기술사회학, 거버넌스 연구, 시민사회가 함께 답해야 할 영역이다. 'AI가 그렇게 결정했다'는 말은, 이 모든 인간적 선택과 권력 관계를 가리는 매우 편리한 변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AI 윤리의 한 영역은 기계에 대한 윤리가 아니라 'AI를 설계·운영·사용하는 인간 집단의 윤리', 곧 AI 거버넌스를 둘러싼 사회적 규범 설계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 교실에 도착한 야누스: Z세대가 던지는 세 가지 질문 이 논쟁은 더 이상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다. 이미 교실과 강의실로 들어와 있다. 생성형 AI와 함께 자라는 Z세대는 아주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AI가 대신 쓴 사과문은 진정성이 있는 건가요?” “AI가 친구를 위로했고, 친구는 실제로 위로받았다고 느끼면, 그건 진짜 위로인가요?” “과제를 AI가 대신 써 줬는데 점수는 잘 나왔어요. 이게 공정한 건가요?” 이 질문들은 Z세대가 이미 관계와 감정, 공정성과 책임, 학습과 평가의 영역에 AI가 깊숙이 개입한 현실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습은 더 이상 '교과서/교재–교사/교수–학생'의 삼각 구도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개입한 다층적 상호작용이다. 그렇다면, 지식 전달과 문제 풀이의 상당 부분을 AI가 떠맡게 되는 시대에, 교육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필자가 보기에 답은 '윤리적 근육(ethical muscle)'을 기르는 교육이다. 여기서 윤리적 근육이란, 타인의 취약성과 고통을 인지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서적 능력, 기술이 인간 존엄성과 사회적 불평등에 미칠 파장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단기 효율성보다 공동체의 장기적 이익을 우선하는 규범적 판단 능력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규칙을 잘 지키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기술 환경을 비판적으로 읽고 자신의 선택을 성찰할 수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일이다. AI가 점점 더 많은 것을 '대신 할'수록, 인간이 스스로 해야 할 도덕적 판단과 책임은 오히려 더 무거워진다. ■ 야누스 문턱에서, 양심을 코드로 오독하지 않을 용기 2024년 노벨상은 인공지능이 현대 과학과 사회에 끼친 공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건이었다. 동시에, 그 주역들 가운데 일부가 기술의 위험과 한계를 직접 경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시대의 역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앞으로 AI는 의료·교육·환경·에너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분명히 거대한 효용을 낼 것이다. 그러나 같은 기술이 일자리 구조, 권력 집중, 민주주의 제도, 심지어 인간 정체성 전반에 걸쳐 거센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이 두 측면을 동시에 직시하는 태도야말로, '디지털 야누스' 앞에 선 인류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지적 정직성이다.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두 가지 극단이다. “AI가 곧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기술 유토피아주의나 “AI가 곧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단순 디스토피아 공포다. 두 관점 모두 공통적으로, 인간의 정치적·윤리적 선택 가능성을 지워 버린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AI는 도덕적인가?”가 아니다. “이 강력한 도구를 설계하고 사용하는 우리는 어떤 기준과 절차, 그리고 양심을 가지고 이 기술을 길들일 것인가?”라는, 훨씬 오래되고 기본적인 질문이다. AI에게 진정한 의미의 양심을 심을 수 있는가에 대해 현재 과학과 철학은 “그렇다”고 말할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부정적 답변은 곧바로 우리에게 다른 과제를 던진다. 양심을 코드로 착각하지 않는 냉철함, 기술 너머의 인간을 끝까지 중심에 두려는 태도가 절실하다. AI 윤리란 결국, 이 두 가치를 법과 정책, 교육과 문화, 국제 규범과 거버넌스 안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묻는, 매우 현실적이고 긴급한 과제다. 21세기의 신(新)야누스 앞에서, 우리는 어느 얼굴만 바라볼 것인가가 아니라, 두 얼굴을 모두 직시한 채 어떤 방향으로 걸어 나갈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 박형빈 서울교대 교수는.... ▲약력 · 서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 미국 UCLA 교육학과(Department of Education) 방문학자 · 서울교육대학교 교육전문대학원 에듀테크전공·AI인문융합전공 교수 · 서울교육대학교 신경윤리·가치AI융합교육연구소 소장 ▲주요 경력 및 사회공헌 · 현 신경윤리융합교육연구센터 센터장 · 현 가치윤리AI허브센터 센터장 · 현 경기도교육청 학교폭력예방자문위원 · 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주요 수상 ·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도서 3회 선정 ― 『어린이 도덕교육의 새로운 관점』(2019, 공역), 『뇌 신경과학과 도덕교육』(2020), 『양심: 도덕적 직관의 기원』(2024, 역서) ▲주요 저서 · 『도덕적 AI와 인간 정서』(2025) · 『BCI와 AI 윤리』(2025) · 『질문으로 답을 찾는 인공지능 윤리 수업』(2025) · 『AI 윤리와 뇌신경과학 그리고 교육』(2024) · 『양심: 도덕적 직관의 기원』(2024) · 『도덕지능 수업』(2023) · 『뇌 신경과학과 도덕교육』(2020) · 『통일교육학: 그 이론과 실제』(2020) ▲연구 및 전문 분야 · 도덕·윤리교육, 신경윤리 기반 도덕교육 · AI 윤리 교육, 디지털 시민성 교육 ·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윤리 및 인간 증강 윤리 · 생성형 AI 할루시네이션과 윤리교육 대응 · 통일 윤리교육 및 분단 사회 도덕교육 재구성 · '책임 사고 5단계' 기반 AI 윤리교육 모델 개발

2025.11.30 12:08박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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