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규제는 좋지만 실효성 아쉬워...모빌리티 B- 학점
지디넷코리아는 오는 5월20일 창간 23주년을 맞아 윤석열 정부 1년을 평가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윤 정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내놓은 반도체·바이오헬스·자동차·디지털 등 산업별 육성방안과 12대 국가전략기술을 포괄하는 국가성장전략으로 新성장 4.0 전략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전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치솟은 물가와 금리 등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IMF 외환위기(1997), 금융위기(2008)를 극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新성장 4.0 전략을 통해 위기극복과 더불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新성장 4.0 전략은 가동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완결된 학점'을 주기엔 부족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분야별로 성적을 매길 계획입니다. 이 같은 작업이 우리나라가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초일류국가로 도약하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배달 라이더는 일반 근로자와 비교하면, 노동 환경이 열악하고 소득이 일정하지 않다. 보험 확대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택시 플랫폼 수수료 체계는 대단히 불합리하고, 국민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정부가)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해 재정 지원할지, 요금을 자율적으로 풀어줄 지 여부 등에 대해 정부 입장이 명확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한 말이다. 배달과 택시, 차량공유 등 모빌리티 플랫폼 업계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큰 틀에서 두 갈래로 흘러갔다. 하나는 플랫폼 업계 종사자와 이용자 각각 처우 개선과 편의성 제고를 위한 제도 도입, 또 사업자들에 자율성을 부여하면서 산업 활성화를 목표로 한 정책적인 뒷받침이다. 산업재해 전속성 요건 폐지·배달 서비스 공제조합 설립 눈앞 등 성과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둔 지난해 2월 윤 대통령은 지디넷코리아에 “플랫폼 독과점과 노사 문제 등에 대해선 정부가 문제를 직시해 해결해야 한다”며 “정부는 경제 성장 주체가 아니라, 민간으로 임무를 맡아야 한다”고 했다. 당선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선 배달 라이더에 적용된 산업재해 전속성 요건 폐지를 골자로 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 논의를 시작했고, 윤석열 정부에서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 사업장에서 월 소득 115만원을 넘고, 93시간 이상 일해야 산재보험을 받을 수 있었던 라이더들 숨통이 트이게 됐다. 인수위는 라이더 보험료 부담을 덜어주고자, 시간제 이륜차 보험을 활성화하고 비용 부과 체계도 마련했다. 하루 3시간, 주 4일 근무하는 경우 현행 보험 체계에선 204만원을 보험료로 납부했다면, 이를 99만원까지 절감할 수 있게 된 것. 이전 정부부터 논의돼 온 배달 서비스 공제조합의 경우, 국토교통부와 배달 플랫폼 9개사가 합작해 하반기 설립을 앞두고 있다. 공제조합은 모바일 이용이 잦은 라이더가 간편하게 유상운송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앱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국토부 조합 설립 인가 연구용역 심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달 허가날 것으로 보인다. 올 초 윤석열 정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배달 플랫폼 시장을 향해 첫 규제안을 내놨다. 플랫폼 입점업주와 사업자 간 거래 계약서를 작성할 때 필수사항을 구체화하고, 분쟁 처리 절차를 개선해 점주 부담을 덜어내겠다는 '자율규제'안 그것이다. 공정위는 내달 말까지 자율분쟁조정협의회를 꾸려 점주와 라이더, 이용자 등 업계 여러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모색할 예정이다. 팬데믹 이후 불어난 배달 비용을 낮추기 위해, 배달의민족(배민)과 쿠팡이츠 펼쳐온 포장 주문 무료 수수료 지원책도 내년 3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국토부 '심야 택시난 완화 대책' 내놔...택시 호출 사업자 제재 강화도 택시 업계는 윤 정부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작년 중순 엔데믹 전환에 따라 야간 택시 수요가 늘어난 데 반해 공급량이 이를 따라오지 못해 수급 불균형이 나타났다. 카카오T(카카오 택시)로 호출한 이용자들이 택시를 잡지 못하는 사태가 장기화 됐는데, 여기에 정부가 중재자로 나섰다. 국토부는 지난해 말 '심야 택시난 완화 대책'을 발표, 50년간 유지한 개인택시 부제를 해제하고 택시 탄력 호출료를 최대 5천원으로 인상했다. 이와 함게 택시 호출 시, 승차 거부를 방지하고자 승객 목적지 미표시 의무화 법안(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배달 플랫폼과 비교했을 때, 택시 호출 사업자엔 강한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을 제정해 지난 1월12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명확히 규정하고 남용행위를 유형별로 구체화해 플랫폼 내 공정한 거래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게 심사지침 핵심 내용이다. 매출이나 시장 점유율 기반으로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추정해온 전통 산업과 달리, 서비스가 이용자 편익에 끼치는 영향력과 이용자수(빈도), 데이터 수집 능력 등을 고려해 시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를 급변하는 플랫폼 산업에 맞게 판단하겠다는 얘기다. 이어 카카오 택시 운영사 카카오모빌리티가 지난 2월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 257억원을 부과 받았다. 공정위는 카카오모빌리티가 배차 알고리즘을 조작해 카카오 가맹택시를 우선 배차하며 특별대우를 한 것으로 봤다. 사실상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이 적용된 첫 번째 사례다. 쏘카를 필두로 한 차량공유 시장에도 변화 바람이 불 전망이다. 국토부는 다음 달 내 공유차량을 편도로 이용한 후, 등록 영업지역이 아닌 곳에 반납하더라도 최대 15일간 영업할 수 있도록 운행 제한을 완화하기로 했다. 가령 서울에서 쏘카를 이용한 고객이 편도 서비스로 강원이나 대전 등에 차를 반납하면, 도착 지역에선 영업할 수 없던 제재가 풀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편도 서비스 이용 활성화를 통해 수수료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타 지역으로 운행까지 허용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서울에서 강원까지 편도 서비스로 이용한 뒤 강원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영업만 가능할지, 아니면 강원에서 대전으로 이동이 받아들여질지는 업계 의견을 모아 추가로 의논될 예정이다. 모빌리티 플랫폼 시장 확대엔 긍정적...정부 제각각 규제엔 우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의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자를 향한 (자율)규제안과 라이더, 택시 기사, 또 플랫폼 이용자 등을 위한 1년간 행보를 어떻게 봤을까. 먼저, 윤 정부 인수위 경제분과 위원장을 지낸 유병준 서울대 교수는 이용자 빈도가 높아지고, 배달·택시 등 모빌리티 플랫폼 시장 파이가 커진 데 대해 합격점(A)을 줬다. 다만, 윤 정부 자율규제 움직임이 부처이기주의로 흘러선 안 된다고 경계했다. 유병준 교수는 “플랫폼 기업이 잘 되면 소비자후생이 촉진되고, 결국 전 산업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정부 주무부처에서 각자 규제 칼날을 빼들어 영역을 확장하려는 기존 관행으로 회귀해선 안 된다. 이용자와 플랫폼 등 관계자들이 '윈윈'하는, 모두를 위한 자율규제 흐름이 이어지는지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미국과 중국에선 플랫폼 산업을 제재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지금은 자국 플랫폼기업 보호, 육성에 앞장서는 기류로 전환했다”며 윤석열 정부 자율규제 기조에 평점 'B'를 줬다. 이 관계자는 “윤 정부는 향후 4년간 배달, 택시 등 모빌리티 플랫폼 시장 내 자율 경쟁을 통해 이용자 효율이 높아지는 방법에 대해 골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유럽연합(EU) 등 글로벌 국가 대비 아직 윤 정부의 모빌리티 플랫폼 산업 증진을 위한 실질적인 방책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정부 자율규제 기조에 대해서도, 류호정 의원은 물음표를 던졌다. 류호정 의원은 “최근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 제정 공청회가 열리고 알고리즘 관련 법안 수건이 발의됐지만, 통과는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류 의원은 “공정위의 카카오모빌리티 알고리즘 조작에 부과된 과징금(257억)은 윤 정부 플랫폼 자율규제 방침이 부른 예견된 결과”라며 “알고리즘이 사실상 '갑'이 되고, 기본요금까지 오르면서 택시 업계 역시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류 의원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플랫폼 기업에 대한 최소주의적 규제와 알고리즘에 대한 투명성 확보”라면서 “자율규제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의 경영 논리와 모순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종사자를 위한 현 정부 노력에 대해선, 류호정 의원은 “배달 서비스 공제조합 등은 결국 '노동권 보장'을 회피하려는 우회 수단일뿐”이라며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 논의를 구체적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또 “해외에선 관련 판례가 누적해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고 있지만, 윤 정부는 우회 경로만 찾고 있어 유감”이라며 현 모빌리티 플랫폼 정책에 1점(5점 만점)을 줬다. 실효성 있는 정책과 방향성 제시엔 부정적..."문제의 근원부터 살펴야" 실효성 있는 정책이 부재했다는 견해도 있다. 김은정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산재보험 적용 범위가 확대됐지만, 여전히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들의 보험 가입률은 저조한 수준”이라면서 “정부에서 배달 서비스 공제조합 예산 지원을 예정했다가 결국 (예산안이) 전액 삭감됐다”고 지적했다. 배달 플랫폼 자율규제안을 놓고, 김은정 사무처장은 “규제 최소화에 무게를 둔 나머지, 단순 배달앱 입점 계약서의 형식적 필수기재사항만 열거한 채 점주 경영 악화와 소비자물가 상승 원인인 수수료, 계약안정성과 불공정 내용이 빠졌다”며 “형식조차 자율규약 형태로 아무런 구속력 없이 플랫폼 사업자들의 선의에만 기대고 있는데, 이는 자율규제라는 틀에서 출발한 배달앱 시장 문제 해결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김 처장은 “택시난 역시 주요 원인으로 꼽힌 기사 수급 문제와 관련해 근본적인 고민 없이, 탄력요금제가 도입되면서 플랫폼 수수료만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결국 이용자가 부담할 택시 요금만 불어나고 근본적인 '택시 잡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악순환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평점을 두고, 1년간 윤석열 정부가 펼쳐온 자율규제 정책 향후 이행도에 따라 진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광범위한 모빌리티 분야를 한두 가지 정부 정책에 따라 평가할 순 없다”며 “배달 이륜차와 택시 등 산업은 플랫폼 운영 문제가 곁들여져, 윤 정부를 비롯한 역대 모든 정부에서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개선점이 없다고 꼬집으면서 낙제점을 줬다. 윤석열 정부 심야 택시난 대책을 두고, 김필수 교수는 “기승을 부리던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자연스레 택시 이용량이 늘어났지만, 그간 기사들 이탈에 따라 초과수요를 메우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근본적으로 기사 수입을 확대해, 시장 참여를 독려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한다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택시는 대중교통이 아니라 일반 교통수단인데, 정부에서 규제를 가할 땐 이를 대중교통으로 간주하면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문제에 있어선 대중교통이 아니라고 한다”며 “지하철이나 버스 운행시간 연장하는 등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정부에서 좀 더 살펴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김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륜차가 자동차 전용도로에 진입하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며 “배달 플랫폼 산업을 육성하려면, 이륜차 정책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