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힘쎈 장님, 쓰임새 무한 확장해 글로벌 개척"
“로봇을 적용한다고 뭐든 다 되는 건 아니에요. 로봇은 사실 힘만 센 장님이나 다름없거든요. 그래서 로봇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문제가 무척 중요해요. 어떤 방식으로 로봇을 도입하고 싶은데 가능할지에 대한 솔루션을 주는 게 어플리케이션의 영역이죠.” HD현대로보틱스 대구 현풍공장에서 만난 임현규 로봇어플리케이션부문장은 산업용 로봇에 관해 이처럼 설명했다. 그는 2000년 현대중공업 로보틱스연구실부터 시작해 매니퓰레이터(로봇 팔)을 연구해온 로봇 전문가다. 동역학 기반 제어 기술을 활용해 이 회사의 다관절 로봇 모델 33종의 성능을 개선한 바 있다. ■ "크고 빠른 로봇 제어하는 기술이 핵심" 로봇은 단순 반복 작업에 강하다.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다만 크기를 키우고 힘이 세질수록 진동을 제어하는 기술의 난이도도 더 어려워진다. 안전 문제도 더해진다. 속도를 낮추면 모든 걱정이 해결되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모순이 생긴다. 임 부문장은 그간 로봇 모션 계획에 대한 기제와 동작 제어를 연구해왔다. 거대한 산업용 로봇을 떨림 없이 제어할 수 있는 기술력은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동체 진동을 잡는 데 많은 시간을 쓰면 그만큼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빨리 움직이면서 안전한 로봇은 만들 수 없다”고 임 부문장은 꼬집었다. 최근 사람과 공존하며 일할 수 있는 '협동로봇'이 시장에서 주목 받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작고 느리다'는 전제가 붙는다. 크고 빠른 산업용 로봇이 기본적으로 펜스를 치고, 사람이 접근하면 작업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안전을 확보하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임 부문장은 “협동로봇도 차츰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각자 분야에 맞게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스폿 용접 강자…조선 중조립 영역으로 역할 키우는 중" 임 부문장은 2021년부터 품질부문장을 맡다가 올해 7월 로봇어플리케이션부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부문은 크게 자동차와 중공업 분야로 나눈다. 자동차 어플리케이션 내에서는 자동차 스폿 용접용 로봇부터 차체 아크(박판) 용접, 내·외부 하부 도장, 의장라인 핸들링 공정에 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어플리케이션 분야는 이 회사의 주요 관심사다. 용접 어플리케이션에 쓰는 로봇만큼은 어떤 로봇 회사와 견줘도 경쟁력이 있다고 임 부문장은 자신했다. 중공업 어플리케이션은 조선·해양과 건설기계 현장에 주목한다. 특히 조선소에도 용접 자동화 시스템 도입을 늘리는 추세다. 선박 소조립을 넘어 중조립 영역으로 로봇이 역할을 키우고 있다. 건설기계 현장에서는 로봇 자동화율이 90%를 넘어섰다. 기존 로봇 용접시스템 대비 시설 투자비를 15% 가량 절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외에도 팔레타이징, 프레스 핸들링 등 영역에도 로봇을 공급했다. 특히 로봇과 함께 그리퍼나 용접기와 같은 주변 설비도 제공해 매출을 확장하는 중이다. ■ "저렴해진 로봇 가격…부가 가치 늘리는 일이 중요" 로봇 업체가 어플리케이션에 집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산업용 로봇은 계속 저렴해져왔다. 임 부문장이 처음 현대중공업에 온 2000년, 한 대에 1억원에 근접하던 로봇 가격은 어느 덧 절반 가까이 낮아졌다. 로봇 공급자가 많아지며 경쟁이 붙은 결과다. 상황이 이렇자 매출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로봇 시장 자체는 꾸준히 성장했다. 로봇 가격은 내리고 인건비는 오르니 예견된 수순이었다. 최근에는 주력인 자동차 산업에서 전동화에 속도를 내면서 신차 공장 증설에 따른 로봇 수요도 다시 늘어나는 분위기다. 로봇 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온 셈이다. 실제로 이 회사의 지난 2분기 산업용 로봇(어플리케이션·FPD 포함)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3% 성장했다. 올해 공격적인 수주 목표도 세웠다. 임 부문장은 “전방산업과 유기적으로 소통하면서 한국의 장점을 살리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로봇을 보수적인 관점에서 운영하지 않고 외부로 확장성을 넓히며 상호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임 부문장은 “로봇은 계속 뭔가 붙여야 생명력을 갖는다”며 “반복 작업만 하던 로봇에 비전 센서를 붙인 것처럼, 앞으로는 인공지능(AI)을 접목하고 지능화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맥락에서 시스템 통합(SI)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임 부문장은 “유럽에서는 '로봇을 저렇게 쓰네?' 싶을 정도로 잘하는 SI 업체가 많다”며 “우리나라는 이 분야 시장이 아직 작은 편”이라고 말했다. 로봇은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만들 수 있는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로봇 쓰임과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도 얼마든 외형을 키울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제 로봇을 잘 만드는 것 이상의 가치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로봇 업계가 분주하게 움직일 때다. 임현규 HD현대로보틱스 로봇어플리케이션부문장 프로필- 1994~2000년,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 학사·석사- 2000~2007년, 현대중공업 로보틱스연구실 연구원- 2007~2008년, 미시간 주립대학교 방문연구원- 2013~2015년, 현대중공업 로보틱스연구실 동적제어/제어성능연구팀장- 2015~2021년, 현대중공업/현대로보틱스 응용제어연구팀(개발팀)장- 2021년~현재, HD현대로보틱스 품질부문장- 2023년~현재, HD현대로보틱스 로봇어플리케이션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