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 슬리퍼 원조?"…2000년 전 로마 목욕용 나막신 발견
고고학자들이 영국 북부의 고대 로마 요새 빈돌란다에서 보존 상태가 뛰어난 로마 시대 신발 수천 켤레를 발굴했다. 이 가운데에는 현대의 샤워실이나 탈의실에서 신는 슬리퍼와 유사한 목욕용 나막신도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끈다.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 보도에 따르면, 이 신발은 나무 밑창과 가죽 갑피로 만들어진 슬립온 형태로, 로마인들은 이를 라틴어로 '스쿨포네아이(sculponeae)'라고 불렀다. 당시 사람들은 목욕탕의 뜨겁고 미끄러운 바닥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이 신발을 착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문화유산보존단체 잉글리시 헤리티지에 따르면, 로마 목욕탕은 단순한 위생 시설이 아니라 중요한 사교 공간이었다. 이용객들은 옷을 벗은 뒤 차가운 방과 따뜻한 방, 뜨거운 방을 오가며 목욕을 즐겼다. 특히 로마 목욕 문화의 핵심 기술인 '히포코스트(hypocaust)'라 불리는 바닥 난방 시스템은 바닥 아래 화로에서 발생한 열을 순환시켜 실내와 욕조를 데웠다. 이 때문에 바닥 온도가 매우 높아져 보호용 신발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 시대 목욕용 나막신은 나무와 가죽 등 쉽게 부패하는 재료로 제작돼 현재까지 남아 있는 사례가 많지 않다. 하지만 빈돌란다는 산소가 거의 없는 진흙 층 덕분에 유기물이 탁월한 상태로 보존되는 환경을 갖추고 있어 다양한 생활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대학교 고고학자 엘리자베스 그린은 “빈돌란다에서 지금까지 5000점이 넘는 로마 신발이 발견됐으며, 이 가운데 약 50점이 목욕용 나막신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발견된 나막신은 대부분 높이 2.5~5cm의 나무 밑창과 발등을 가로지르는 가죽 끈으로 구성돼 있다. 일부는 단순한 형태였지만, 기하학적 문양이나 발가락 모양 장식이 새겨진 사례도 확인됐다. 그렇다면 이번에 발견된 나막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샤워용 슬리퍼일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미 이집트에서 기원전 3300년 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는 샌들 유물을 발견했으며, 투탕카멘 왕의 샌들도 대표적인 고대 신발 유물로 꼽힌다. 또한 캐나다 토론토의 바타 신발 박물관 관장이자 큐레이터인 엘리자베스 세멜핵은 에트루리아인들이 기원전 6세기경 금속 틀로 만든 샌들을 착용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그 신발들은 목욕탕용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엘리자베스 그린은 이 나막신이 목욕용으로만 사용됐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로마 제국이 유럽에서 사라진 뒤 수세기가 지나 중세인들은 진흙과 물, 눈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신발 위에 덧신는 형태의 나막신을 사용했다. 빈돌란다에서 발견된 일부 나무 나막신 역시 덧신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2천 년 전 로마인들이 목욕용 신발과 덧신을 겸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목욕용 나막신은 2027년 9월까지 토론토에 있는 바타 신발 박물관에서 열리는 '빈돌란다 발굴 전시회에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