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아이매틱스가 '월드모델'로 제조 현장 문제 푸는 법
공장에서 불량품을 찾아내는 AI를 만들려면 불량 데이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충분히 확보하기부터 어렵다. 불량 발생 빈도가 낮고, 문제가 생긴 제품도 바로 수리해 납품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이아이매틱스는 정상 제품의 패턴을 먼저 익혀 여기서 벗어난 부분을 찾는 방식으로 해법을 모색했다. 채정훈 에이아이매틱스 AI미래기술개발그룹장은 지난 26일 지디넷코리아와 만나 “처음에는 결함 데이터를 일정 이상 모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예 줄 수 없다는 고객들도 있었다”며 “현장에서는 정상 데이터는 줄 수 있지만 결함 데이터는 줄 수 없다는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차량용 AI 블랙박스 '로드스코프'로 영상 인식 기술을 쌓아온 에이아이매틱스는 공장 검사와 헬스케어 등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 이를 연결하는 핵심 기술은 '월드모델'(AI가 인간처럼 현실 세계 물리 법칙과 인과관계를 학습해 내부에 가상의 세상을 구축하고, 직접 겪어보지 않고도 자신의 행동에 따라 일어날 미래 상황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예측하는 AI의 내부 뇌)이다. 영상과 신호에서 기본적인 패턴과 관계를 먼저 학습해, 사고나 결함처럼 데이터가 드문 상황에서도 AI를 적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품 바뀌어도 수 시간 내 검사 준비…현장에 맞춘 AI 설계 에이아이매틱스의 비전 검사 장비 'AIM-T1'은 카메라로 제품을 촬영해 흠집과 파손 등 불량을 찾아낸다. 스마트폰용 인쇄회로기판(PCB)과 카메라 모듈, 지문인식 센서 등 전자부품이 주요 검사 대상이다. 회사에 따르면 3㎛급 미세 결함을 0.1초 안에 판정하며 하루 최대 7만 5000개를 검사할 수 있다. 채 그룹장은 AI 검사의 강점으로 일관성을 꼽았다. 사람이 반복 작업 중 피로를 느끼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같은 기준으로 검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결과를 일관되게 뽑는 데는 AI가 훨씬 유리하다”며 고객사 한 생산라인에서 장비 도입 후 기존 약 40명이 맡던 작업을 2명이 운영하게 된 사례를 소개했다. 공장은 생산 제품이 바뀔 때마다 검사 환경도 다시 맞춰야 한다. 제품을 고정하는 틀인 지그를 교체하고, 카메라와 조명을 조정한 뒤 새 데이터를 확보해 AI를 학습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존에는 여기에 짧게는 3일, 길게는 2주가 걸렸다. AIM-T1은 지그를 교체해 새 제품에 대응하도록 설계했다. 월드모델을 활용해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와 시간도 줄였다. 현재 수 시간 안에 새 제품 검사에 적용할 수 있으며, 회사는 학습부터 배포까지 1시간 이내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장마다 다른 판정 기준을 맞추는 작업도 중요하다. 불량을 놓치는 '미검'과 정상 제품을 불량으로 판단하는 '과검'을 줄이려면 검사원의 경험과 실제 데이터를 반영해야 한다. 채 그룹장은 “기준이 명확하게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 현장에서는 작업자와 노하우에 따라 다르다”며 “새로운 결함이 나오고 제품도 바뀌기 때문에 이를 맞추는 작업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차량용 솔루션은 졸음운전과 휴대전화 사용, 전방주시 태만, 신호위반 등을 감지해 경고한다. 회사가 제시한 한국교통안전공단 노선버스 500대 실증 자료에 따르면 2024년 6~12월 사업에서 졸음운전은 99.7%, 교통사고는 29.2% 감소했다. 도입 초기에는 감시받는다는 운전자들의 불만도 있었다. 회사는 경고가 필요한 상황과 경보음을 조정하며 현장 의견을 반영했다. 채 그룹장은 “운전자가 이럴 때 울려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상황들을 정리했다”며 안전운전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제품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런 기능을 작은 기기에서 구현하기 위해 AI 모델도 처음부터 용도에 맞춰 설계했다. 자체 모델 '에임넷(aimNet)'은 1MB급으로 경량화해 기기 안에서 영상을 처리한다. 채 그룹장은 “처음부터 목표와 제약 사항을 정해놓고 모델을 설계한다”며 “고해상도 이미지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에 맞춰 최적화하기 때문에 기존에 속도 문제로 AI를 도입하기 어려웠던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답 가르치기 전 사전 지식부터…월드모델로 데이터 부족 보완 차량과 공장, 의료 분야는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교통사고와 제품 결함은 드물게 발생하고, 의료 데이터는 전문가가 판독 결과를 붙이는 데도 비용이 든다. 에이아이매틱스는 정답이 붙지 않은 영상과 신호로 먼저 학습한 뒤, 소량의 정답 데이터로 개별 업무를 익히는 월드모델 기반 접근법을 활용하고 있다. 채 그룹장은 이를 아이가 주변 환경을 배우는 과정에 빗댔다. 가까운 물체는 크게 보이고, 물체를 놓으면 아래로 떨어진다는 관계를 경험으로 익힌 다음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람이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사전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배우기 때문”이라며 “그런 사전 지식 상태를 만들어 놓는 것이 월드모델”이라고 말했다. 차량 영상에서는 시간에 따른 맥락을 파악하는 데 활용한다. 보복운전처럼 사진 한 장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은 앞뒤 움직임을 함께 살펴야 한다. 회사 측은 차량 이벤트 15종 인식 시험에서 월드모델을 적용한 자체 모델의 성능이 비교 모델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학습 데이터도 무작정 쌓기보다 AI가 혼동하는 사례와 처음 접하는 유형을 골라 확보한다. 드물게 나타난 새 결함은 생성형 AI로 유사 데이터를 만들어 학습을 보강한다. 헬스케어에서는 관계사와 협업해 장기간의 심전도 기록에서 부정맥 의심 구간을 찾아 판독을 돕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채 그룹장은 AI의 개별 성능을 높인 다음에는 전체 작업 흐름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함 인식 속도가 빨라지자 장비를 준비하는 시간이 새로운 병목으로 떠올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개선한 AIM-T1을 개발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체 과정이 다 끝나야 제품 하나가 나오는데 특정 과정만 100배, 1000배 빨라진다고 전체가 그만큼 개선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 공정 전반의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 과제로는 공정 사이의 물류 자동화를 꼽았다. 생산과 검사 등 개별 공정에 이어 자재를 옮기는 작업까지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회사는 공정 운영 플랫폼과 개발 중인 로봇팔 탑재 자율이동로봇을 연계해 자율운영 공장을 단계적으로 구현할 계획이다. 에이아이매틱스는 이 과정에서 쌓은 기술을 바탕으로 2028년까지 여러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범용 월드모델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채 그룹장은 “각 공정은 이미 높은 수준으로 자동화돼 있지만 이를 연결하는 물류에는 비어 있는 부분이 있다”며 “고객이 적은 데이터만으로도 AI를 현장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