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삼석 칼럼]디지털 패권 경쟁시대 '당당한 ICT 외교'를 기대한다
국민 메신저로 우리나라에 카카오톡이 있다면, 일본에는 '라인'(LINE)이 있다. 라인 이용자는 전체 일본 국민의 80%인 9천600만명이나 된다.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라인 이용자는 2억명에 달한다. 라인은 2011년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인 NHN일본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9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당시 일본 내 1위 메신저인 네이버의 라인에 협업을 제안하면서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출자하여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라인야후'를 출범시켰다. 그런데 최근 일본 정부가 라인의 경영권을 일본 기업에 넘기라고 압박을 가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라인에 대한 해킹사고가 발생해 약 51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일본 총무성은 라인야후에 네이버와 자본 관계를 재검토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렸다. 지난달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사실상 네이버의 지분을 소프트뱅크에 매각하고 일본을 떠나라는 요구까지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정부가 민간 기업의 지분 문제까지 개입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비상식적인 일이다. 그 동안 이 사태를 방관하던 우리 정부는 기자들의 질문에 마지못해 “한국 정부는 우리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입장”이라며, “이 문제와 관련해 네이버 측 입장을 확인하는 한편, 필요 시 일본 측과도 소통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뒤늦게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소프트뱅크가 “네이버의 신뢰를 배신하고 뒤통수를 쳤다”는 평가와 함께 글로벌 차원에서 '플랫폼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대에 우리 정부의 'ICT 외교'가 너무 안일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플랫폼 영역에서 국가 간 치열한 주도권 싸움은 '글로벌 기술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의 핵심이다. 일본 정부의 조치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3월 미국 하원에서 소위 '틱톡(TikTok)금지법'이 의원들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가 소유하고 있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지분을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틱톡을 퇴출시킨다는 내용이었다. 틱톡은 1억 7천만명의 미국인이 사용하고 있는 '국민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중국 기업이 소유하고 있어서 미국 시민들의 개인정보 유출 및 그로 인한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는 틱톡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소셜 미디어 시장을 잠식해 가면서 미국 플랫폼 기업에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야를 막론하고 미국 하원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틱톡이 미국에서 개발한 첨단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할 가능성이다. 틱톡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알고리즘,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될 경우 미국 테크 기업들과의 경쟁에 사용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또한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글로벌 차원의 디지털 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앞서가려는 미국 정부의 디지털 패권 전략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 미국 의회에서 최종 통과된 이 법안의 명칭이 '21세기 힘을 통한 평화'(21st Century Peace through Strength Act)로 명명된 것에서 입법 추진 배경과 의도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선거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 2022년 1월 당시 윤석열 후보는 “인공지능 기반의 디지털 플랫폼 정부로 우리나라를 디지털 경제 패권국가로 도약시키겠다”는 비전을 발표하였다. 또한 지난해 4월 정부 출범 후 마련된 '디지털 플랫폼 정부 실현계획 보고회'에서 윤대통령은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지난 30년간 추진해 온 전자정부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직접 설명했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전자정부 플랫폼뿐만 아니라,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는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국민, 기업, 정부가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민관협력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경쟁력을 충분히 갖춘 민간 부문의 디지털 플랫폼 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한 국정과제라는 것은 초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국정운영의 비전 및 전략과 달리 실제 정부의 정책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아니 '토종 디지털 플랫폼'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 정책은 실종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해외에서 수난을 당해도 침묵하고 있다. 대신 규제 일변도 정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플랫폼법은 국내외 기업을 막론하고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소수 대형 플랫폼에 대해 미리 지배적 사업자로 선정하고 위반행위가 발생할 때 신속하게 규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지난 1월 미국 재계를 대표하는 미국상공회의소는 “한국 정부가 플랫폼 법안 통과를 서두르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라며 문제를 제기해 왔다. 미국 상의는 “(한국 정부가) 모든 법안의 전문을 공개하고 미 재계와 정부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충분한 의견 수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한 호세 페르난데스 미국 국무부 차관 또한 기자간담회에서 “(입법과정의) 투명성 보장과 이해관계자의 관여가 필요하다. 한국과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통적인 한미관계를 고려할 때 우리 정부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압력성' 발언들이다. 이외에도 주한 미국대사관이 우리 정부에게 자국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직접 주문한 사례는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미국 국무부나 상의가 우리 정부의 플랫폼법 제정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힌 것은 좁게는 법이 시행되었을 때 미국계 플랫폼 기업들이 입게 될 부정적 영향에 대한 사전 보호 조치이자, 넓게는 미국의 글로벌 플랫폼 패권 확장 전략이라는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내정 간섭으로 비출 수도 있지만, 외교적으로 충분히 의제가 될 만한 사안들이다. 이러한 미국 정부 및 이익단체의 든든한 지원이 있기 때문에 국내에 진출해 있는 미국계 플랫폼 기업들이 우리 정부를 '종이 호랑이' 정도로 생각하고 국내에서 배짱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EU 규제 당국의 납세 및 청소년 보호를 위한 내용 규제에 즉각 순응하는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해외에 나가서 시장을 확장하고 있는 우리 기업, 특히 플랫폼 패권 경쟁시대에 국가를 대신해서 글로벌 시장에 뛰어든 플랫폼 기업들을 보호하는 역할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우방 국가라고 해서 정부 대응에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 경제 전쟁 혹은 디지털 패권 경쟁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국도 없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나라가 우방이고, 국익을 해치는 나라는 적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 “간과 쓸개를 다 내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대일 외교의 현주소다. 그런 일본에서 우리 플랫폼 기업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정부는 통상 분쟁을 각오하더라도 우리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 네이버 경영 전략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정부는 우리 국민들과 기업들이 두 눈 크게 뜨고 이번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국익에 기반한 우리 정부의 '당당한 ICT 외교'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