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플랫폼이 돼야 한다"
원래 메디칼 테크놀로지(Medical Tech)는 질병 예방·진단·치료를 위한 의료기기 관련 산업을 의미하는 말이다. 연재 '김양균의 메드테크'는 기존의 정의를 넘어 디지털 헬스케어를 비롯한 신의료 기술에 도전하거나 창업까지 나선 의료인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두 번째 편의 주인공은 외과의사인 동시에 디지털헬스케어 '전도사'로 활동 중인 한호성 교수다. [편집자 주] 전통적으로 의료기관(상급종합병원급의)은 진료와 연구, 교육의 역할을 맡아왔다. 미래 의료기관은 더 많은 역할을 요구받는다. ICT 기술을 진료 현장 곳곳에 접목해 환자 편의와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이른바 스마트병원으로의 거듭나야한다는 요구가 그렇다. 여기에 더해 한호성 디지털헬스케어연합포럼 회장(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은 의료기관이 '플랫폼(platform)'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플랫폼이란 말의 유래인 기차역의 승강장을 떠올려보자. 당신은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에 간다. 이곳에서 지인과 만나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더러 호두과자 따위의 선물을 승강장에서 살 수도 있다. 서울역은 승객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매일 상당한 물량의 제품과 원료도 이곳을 오간다. 교통, 물류, 거래의 공간으로써의 서울역은 플랫폼으로 작동된다. 이를 의료기관(상급종합병원급에 국한해서)에 적용하면 의료의 공급자인 의료인과 수요자인 의료소비자가 존재할 것이다. 의료기관 안팎의 약국도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해 복약지도를 하면서 의료소비자와 만난다. 이밖에도 의약품을 공급하는 제약회사와 그들의 약을 납품하는 도매업체, 의료기기 제조사와 유통업체 등이 의료기관 내에서 각자 거래를 한다. 그런데 의료기관은 이보다 규모가 작은 중소 '협력의료기관'과 잠재적 경쟁상대로 운영되는 것이 사실이다. 협력의료기관은 덩치가 큰 의료기관이 환자를 빼앗아간다고 여긴다. 때문에 환자 전원 등을 제외하면 서로가 만족할 만한 생태계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의료 공급자와 수요자 간에도 상호교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의료기관의 연구 기능과 상용화 과정을 고려하면 과연 의료기관의 역할은 더 희미해진다. 연구 과정에서 유용한 신기술이나 학문적 발견을 하게 된 연구자는 상용화의 가능성을 계산하게 된다. 투자를 받을지 말지 여부는 연구자 본인의 고군분투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된다. 플랫폼, 그리고 미래 병원 지난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첫 아이폰을 선보인 이후, 애플은 아이폰의 운영체계를 Mac OS로 정했고, 이를 앱스토어를 탑재했다. 앱스토어를 통해 앱을 구매하고, 설치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폰은 앱 개발자와 판매자, 그리고 구매자 모두가 찾는 플랫폼이 됐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잡스의 도전은 대성공을 거뒀고, ICT의 역사를 바꿨다. 한호성 회장은 애플의 플랫폼 전략을 의료기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반문했다. “애플이 생태계 구축 대신 문어발식으로 사업 영역의 확장만 했다면 과연 지금의 애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신축과 증축을 이어가며 규모의 경제에 치중하는 듯한 국내 의료기관들에 대해 한 회장은 “전략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빅5 병원이란 말이 있어요. 규모 경쟁이라면 빅5가 맞겠죠. 그런데 그렇게 몸집만 키운다고 환자에게 어떤 이득이 될까요? 대형병원을 만들어 준종합병원의 환자를 싹쓸이하면 큰 병원에 몰린 환자들은 환자대로 괴롭고, 환자가 떠난 병원들은 살아남기가 힘들어집니다. 전략의 수정이 필요합니다. 한 회장은 의료기관이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렇지만 그가 말했던 플랫폼은 단지 비즈니스 생태계 이상의 개념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플랫폼으로써 의료기관이 작동하려면 어떤 기능이 요구될까? 윤석열 정부는 헬스케어 분야를 '넥스트 반도체'로 규정,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 디지털헬스케어에 대한 여러 국책과제가 추진 중이다. 보건의료를 주도하는 의료기관에서 연구자 주도의 활발한 연구와 상용화, 이를 위한 연구의학자 양성 등이 요구된다. 그렇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한 회장은 외과의사인 동시에 ICT 연구자다. 엔지니어와 컴퓨터를 연구하는 교수들과 교류하면서 그는 디지털헬스케어의 영역에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해왔다. 디지털헬스케어연합포럼을 설립을 주도한 것도 그였다. 하지만 수술 등 환자 진료를 마치고 자기 시간을 쪼개 연구를 하는 의사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환자 돌봄이라는 의사의 본업과 연구가 물리적으로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핵심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환경의 조성입니다. 의료기관은 이런 의료융합과학자 양성을 위한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한쪽에선 의사과학자를 길러내고, 다른 한쪽에선 실용화를 실시해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환경이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방식으로 말이죠.” 일례로 미국은 의료기관과 산업의 협력이 원활한 편이다. 국내 여러 의료기관에서 창업 보육 센터를 마련하고는 있지만, 산업과의 연계가 원활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병원의 공간과 기자재를 스타트업에 대여해주는 단순 사업 형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회장은 특히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발굴 및 육성을 위해 의료기관이 더 다양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본다. “가령, 산업계·연구소·정부·스타트업 투자자 등이 융합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어서 교수뿐만 아니라 연구자라면 이곳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험해보는 생태계가 마련된다면 어떨까요? 이런 모델을 의료기관 스스로 플랫폼이 되어 이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료는 환자를 향해야 한다 보건의료는 그 특성상 공공성을 띈다. 의료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을 공공의 영역에서 바라보는 것은 개념의 명확화가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의료소비자가 가진 일반적인 시각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의료기관은 기로에 서있다. 스마트병원으로 거듭나라는 요구는 환자 편의와 의료서비스의 질 제고 때문이다. 동시에 의료기관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의료기관의 규모 팽창 역시 의료 수익의 확대 목적과 함께 더 많은 환자 돌봄을 위한 치료 시설 확대 측면 모두를 바라본다면 공공성의 획득은 의료기관이 자의든 타의든 충족해야하는 요소이다. 기자는 줄곧 한 회장에게 미래 의료기관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규모의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종합병원 순위에서 주요한 기준은 의료진의 실력과 의료서비스의 질입니다. 다른 병원보다 조금이라도 많은 환자를 우리 병원에 유치해야한다는 전략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환자를 많이 보는 게 아니라 고난이도의 치료를 요하는 환자를 잘 치료하고 소외된 지역 내 협력의료기관과 유기적으로 연계해 그곳의 환자를 잘 돌보도록 상호 협력하는 플랫폼 전략이 요구됩니다.” 의료기관의 또 다른 축인 공공성 확대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묻자 “당연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부는 취약계층에게 두터운 보건복지를 약속했습니다. 저는 의료기관이 정부보다 더 먼저 손을 내밀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의료취약지의 환자들은 서울과 동일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의료기관이 플랫폼이 돼야한다는 제 주장은 의료 공공성 확대에도 적용됩니다. 병원 간 연계는 더 긴밀하게 강화돼야 합니다. 어느 한, 두 병원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병원은 환자 돌봄을 정중앙에 놓고 최상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유기적 플랫폼으로 작동돼야 합니다. 보건의료의 공공성과 산업적 측면, 그리고 환자. 이 모든 요소를 담아내는 플랫폼으로써 우리나라의 의료기관은 탈바꿈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