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세대교체 서막...미래먹거리 챙기는 오너家 3·4·5세
재계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오너일가 자녀들이 경영일선에 등장하며 후계경영에 속도를 낸다. 90년대생 오너일가도 속속 등장한다. 이들은 일선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승계 기반을 닦고 있다. 대부분 나이가 20~30대로 MZ세대(1980년 초~2000년 출생)에 속한다. 8일 재계에 따르면 내년도 정기 임원인사에서 주요그룹 오너일가 자제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주로 그룹의 미래먹거리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이들은 경영능력 입증과 향후 승계를 위한 지분율 확보가 과제로 꼽힌다. ■ 오너家 3세 최태원 장녀·신동빈 장남, '바이오' 이끈다 4대그룹 중 한 곳인 SK그룹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장녀 최윤정씨가 신규 임원이 돼 주목을 받았다. 내년 연말 인사에서 최윤정 SK바이오팜 글로벌투자본부 전략팀장이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승진했다. 부사장급 자리로 입사한 지 7년 만에 그룹 내 최연소 임원이 됐다. 최윤정 본부장은 지난 2017년 SK바이오팜 경영전략실에 선임 매니저(대리급)로 입사했다. 2019년 휴직 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생명정보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2021년 7월 복직해 올해 초 글로벌투자본부 전략투자팀장으로 승진했다. 바이오는 배터리, 반도체와 함께 SK그룹의 미래먹거리(BBC)로 꼽힌다. 그룹 신사업의 중요한 한 축을 장녀에게 맡긴 셈이다. 다른 한 축인 배터리는 최재원 SK수석부회장이 챙기고 있다. 최윤정 본부장은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 유창호 전략·투자부문장과 함께 SK와 공동 운영하는 신약 개발 태스크포스(TF)팀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다만, 최윤정 본부장은 아직까지 그룹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남이자 오너가 3세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전무도 초고속 승진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1986년생 신유열 전무는 지난 2020년 일본 롯데에 입사했다. 이후 지난해 5월 롯데케미칼 일본지사에 상무보로 합류한 뒤 8월 일본 롯데파이낸셜 최대주주인 롯데스트레티직인베스트먼트(LSI) 공동대표로 선임된 데 이어 12월에 상무로 승진했다. 이번 인사에서는 전무가 됐다. 각각 1년도 안 된 시점에 연이어 승진했다. 지주사에서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중책을 맡게된 그는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전략실장도 겸직한다. 롯데그룹 미래성장 핵심인 바이오 사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게 된 것이다. 롯데그룹은 인사를 발표하며 "신유열 전무는 지난해 롯데스트레티직인베스트먼트(LSI) 대표, 롯데파이낸셜 대표 등 투자 계열사 대표직을 역임하며 재무에 대한 전문성을 높여왔다"며 "롯데케미칼 동경지사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는 데 기여했고, 롯데그룹 미래 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끌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유열 전무도 아직 승계를 위한 주요 계열사 지분을 거의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서는 호텔롯데 기업공개(IPO)를 통해 신 전무가 지분 확보에 나설 것으로 관측한다. IPO 과정에서 일본 롯데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광윤사 지배구조 정리와 통합 지주사 설립 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 이웅열 장남 이규호·김승연 삼남 김동선, 초고속 승진 30대 부회장도 등장했다. 코오롱그룹은 이번 연말인사에서 이웅열 명예회장 장남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 대표이사 사장을 지주사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1983년생인 그는 사장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하게 됐다.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한 이 부회장은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에 차장으로 입사해 제조현장 근무부터 시작했다. 이후 코오롱글로벌(건설) 부장,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 코오롱 전략기획 담당 상무 등을 거쳤다. 35세였던 201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COO를 맡아 온라인 플랫폼 구축하고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업무를 맡았다. 2021년에는 지주사 CSO를 겸직하며 그룹의 미래 전략 수립을 주도했다. 이규호 부회장은 차기 총수로 유력하다. 다만, 아직 지분 승계는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부회장 승진 후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승계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남은 과제다. 이 명예회장은 2018년 회장직을 내려놓으면서 “나는 (아들에게)기회를 주는 것이고 나중에 능력이 있다고 판단이 돼야 (경영승계가)가능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화그룹은 삼형제가 주요 사업을 분할해서 맡고 있다. 차기 총수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김동관 부회장이 방산·에너지를 맡고 있으며, 2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을,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유통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는 3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1989년생인 김 부사장은 2017년 불미스런 사건으로 한화건설 팀장에서 물러난 뒤 독일로 넘어가 종마·요식업 등 사업에 도전했다. 2020년부터 사모펀드(PEF) 운용사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에서 근무하다, 지난 2020년 말 한화에너지 글로벌전략 담당(상무보)으로 3년 만에 한화그룹에 복귀했다. 1년 후인 2021년 5월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갤러리아 상무로 발령난 그는 1년 5개월 만에 전무로 승진했고, 또다시 1년 만에 부사장을 달며 승진가도를 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승진 배경으로 미국 수제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 국내 론칭 성공을 꼽는다. 김 부사장은 그룹 '미래먹거리'로 불리는 로봇사업도 챙기고 있다. 그는 올해 한화갤러리아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며 승계를 위한 주춧돌을 쌓고 있다. 최근 한달만해도 5번 이상 장내매수로 지분을 사들였다. 그 결과, 처음 지분을 사들인 지난 4월 0.03%였던 김 부사장 보유 지분율은 6일 기준 1.22%가 됐다. ■ 사촌경영 전환 두산그룹, 90년대생 동갑내기 오너家 5세 등판 이미 4세 경영이 자리잡은 두산그룹은 5세 경영 준비에 돌입했다. 아직 별(임원)을 달진 않았지만 주요 부서에서 경영 수업을 받으며 승진 기반을 닦고 있다. 박정원 두산 회장 장남 박상수씨는 지난 9월 두산그룹 지주사인 두산에 입사했다. 그는 신사업 전략팀 수석으로 입사해 두산의 반도체·모빌리티 사업 등 신사업 발굴 업무를 맡게 됐다. 두산 지주부문 CSO는 그룹 전반의 비즈니스 전략 수립, 신사업 담당하는 조직으로 김도원 두산테스나 대표가 이끈다. 박 수석은 1994년생으로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을 졸업하고 2020년부터 한국투자증권에서 반도체 애널리스트로 근무했다.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의 장남 박상우 파트장도 지난해부터 두산 계열사 하이엑시엄에 재직 중이다. 하이엑시엄은 미국에 소재한 두산 수소 분야 자회사로 발전용 수소연료전지와 수전해 시스템을 생산한다. 박 수석과 동갑내기인 박상우 파트장은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2018년부터 2022년 초까지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하다 하이엑시엄에서 사업개발 부서 업무를 맡고 있다. 두산그룹은 차세대 에너지, 산업기계, 반도체·첨단 IT 등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5세들에게 신사업 경영 수업에 돌입했다는 평가다. 박상수 수석은 지난해 말부터 지주사 지분도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다. 박 수석은 고(故) 박용곤 명예회장의 맏손자다. 10월 27일 기준 박 수석 지분율은 0.63%로 두산 5세 가운데 가장 많다. 박상수 파트장은 0.03%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그동안 '형제 경영'과 '장자상속'의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고 박용곤 명예회장→박용성 전 회장→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박용만 전 회장 순으로 형제들끼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 박용만 전 회장이 2016년 조카이자 4세인 박정원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3세 형제경영에서 4세 사촌경영 체제로 전환됐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지분 승계는 경영 승계의 방점"며 "후계자에게 미리 지분을 이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마지막 승계 단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이어 "지분을 승계 받기 이전에는 경영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요직에 앉히거나 빠르게 승진하는 등의 기조를 이어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