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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유산의 진짜 시간, 등재 이후 시작된다

이 시리즈는 오래된 장소를 과거의 흔적으로만 보지 않고 오늘의 도시가 다시 읽어야 할 문화자산으로 바라보는 연재입니다. 시즌1이 도시와 유산을 전략과 경험, 콘텐츠의 관점에서 읽었다면, 시즌2는 세계유산과 오래된 장소를 도시의 기억, 감각, 표정의 언어로 다시 해석합니다. 사람은 유산의 이름보다 그 도시를 걸었던 감각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이번 시즌은 인문 에세이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의 시선을 바탕으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부산 벡스코, 2026년 7월 19~29일)와 민선 9기 지방정부 출범을 함께 바라보며 도시와 유산이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읽어냅니다. 시즌2는 2026년 6월 29일부터 7월 28일까지 주 1~2회씩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공식 폐회를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세계유산의 등재와 보존상태, 위험유산과 국제지원, 기후위기와 개발압력 등 세계유산협약을 둘러싼 여러 과제가 논의됐다. 본회의 첫날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주도한 '세계유산에 관한 부산 선언'이 채택됐다. 무력분쟁과 기후변화, 개발압력과 빠른 기술 변화가 세계유산을 위협하는 시대에 국제사회의 협력과 공동책임을 강화하자는 선언이다. 회의 기간에는 '한국의 갯벌' 2단계 확대 등재도 결정됐다. 여수·고흥·무안·서산갯벌이 새롭게 포함되며 세계자연유산의 범위가 넓어졌다. 하나는 국제사회의 책임을 확인한 선언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이 축하할 등재 성과다. 그러나 두 장면은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세계유산의 이름을 얼마나 더 얻을 것인가. 그 이름에 따르는 책임을 얼마나 오래 감당할 것인가. 세계유산의 진짜 시간은 등재 이후 시작된다. 등재보다 어려운 등재 이후 세계유산 등재는 한 장소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일이다. 도시와 지역은 자부심을 얻고 유산은 더 넓은 관심을 받는다. 관광객이 늘고 관련 사업도 확대된다. 지방정부는 세계유산을 도시브랜드와 관광정책의 중심에 놓는다. 그러나 관심이 커질수록 유산이 감당해야 할 압력도 커진다. 방문객이 급격히 늘면 장소의 환경과 주민의 생활이 달라진다. 도로와 주차장, 숙박시설과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주변 경관과 생활환경이 흔들릴 수 있다. 자칫 유산이 지닌 고유한 시간과 품격이 빠르게 소비될 위험도 있다. 유산을 보존한다는 것은 건축물이나 자연환경의 외형만 남기는 일이 아니다. 그 장소가 지닌 역사적 맥락과 진정성, 오랫동안 유산을 이어온 공동체의 삶까지 함께 지키는 일이다. 등재는 목표가 아니라 관리의 출발점이다. 몇 건을 보유했는가보다 등재 이후 어떻게 관리했는가가 한 국가의 유산정책 수준을 보여준다. 부산 선언에서 한국의 갯벌까지 부산 선언에서 주목할 키워드는 '협력'이다. 오늘날 세계유산이 직면한 위기는 한 국가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기후변화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의 경계를 가리지 않으며, 개발압력은 유산구역 밖의 도시계획과 인프라 사업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무력분쟁과 재난은 국경을 넘어 대응해야 하고,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도 기록과 접근성, 진정성에 관한 새로운 책임을 요구한다. 협력은 선언문을 장식하는 문구가 아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국제기구와 전문가, 지역공동체와 시민이 실제 관리책임을 나누는 방식이 돼야 한다. 세계유산은 한 국가의 영토 안에 있지만 그 가치는 인류가 함께 나누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확대 등재된 '한국의 갯벌'은 그 책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갯벌은 철새의 이동경로와 생물다양성뿐 아니라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이어져온 주민의 생활과 생업을 함께 품고 있다. 관리구역이 넓어진 만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역주민이 조정해야 할 과제도 커졌다. 생태계를 지키면서 주민의 삶을 이어가야 하고, 방문객의 증가가 갯벌의 수용력을 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세계자연유산은 사람을 배제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자연의 질서 안에서 지역공동체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관계를 이어갈 것인지까지 함께 묻는 장소다. 등재는 가치를 인정받은 순간이고, 보존관리는 그 가치를 매일 증명하는 일이다. 세계유산의 오늘,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기후위기와 개발압력은 세계유산의 시간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해수면 상승과 폭우, 산불과 가뭄, 폭염과 태풍은 자연유산뿐 아니라 문화유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유산구역 안을 지켰더라도 주변에 고층건물과 도로, 관광시설이 들어서면 경관과 생활환경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세계유산 관리는 국가유산 담당 부서만의 일이 아니다. 도시계획과 건축, 교통과 관광, 환경과 재난, 지역개발과 주민정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개발계획이 결정된 뒤 보존부서가 뒤늦게 의견을 내는 방식으로는 유산의 가치를 지키기 어렵다. 계획의 시작부터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함께 판단해야 한다. 세계유산은 국가의 이름으로 등재되지만 그 일상을 책임지는 곳은 지방정부와 지역사회다. 지방정부가 세계유산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브랜드로만 바라보면 정책은 행사와 홍보에 치우치기 쉽다. 반대로 보존을 이유로 시민과 장소를 지나치게 분리하면 유산은 지역의 삶과 멀어진다. 좋은 세계유산 정책은 보존과 일상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주민이 관리계획을 이해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관광의 편익과 부담을 지역공동체가 공정하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세계유산의 오늘은 국제회의장이 아니라 지역행정의 선택과 시민의 일상에서 만들어진다. 개최도시 부산이 이어갈 시간 개최도시 부산도 회의 이후의 책임 앞에 서 있다.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은 11개 구성유산을 하나의 역사로 연결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국가 기능의 유지와 피란민의 생활, 국제연대와 인도주의라는 관계를 설명하려면 개별 장소를 보존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도시계획과 교통, 관광과 기록, 주민 참여가 하나의 관리체계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세계유산위원회를 개최했다는 사실이 부산의 등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개최도시이기에 더 엄격한 질문을 받는다. 개발과 관광압력 속에서 구성유산의 진정성과 경관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피란의 기억을 오늘의 시민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회의의 경험을 등재의 명분이 아니라 관리의 책임으로 이어갈 수 있는가. 부산시는 글로벌 헤리티지 포럼의 정례화와 유네스코 카테고리2센터 설립 검토도 제안했다. 세계유산위원회를 개최한 도시에서 세계유산의 문제를 계속 논의하고 해결하는 도시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국제협력의 거점은 건물과 명칭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연구와 전문인력, 안정적인 재원과 국내외 협력망, 보존현장에 적용되는 성과가 쌓여야 한다. 국제회의의 성공은 행사가 끝난 날 평가할 수 있지만, 국제협력의 성과는 그 이후 무엇을 이어갔는가로 평가된다. 개최국에서 책임국가로 대한민국은 이번 회의를 통해 국내 최초 개최와 부산 선언, 한국의 갯벌 확대 등재라는 성과를 얻었다. 이제 회의에서 말한 협력과 공동책임을 국내 세계유산의 관리에 먼저 적용해야 한다. 우리가 축적한 조사와 연구, 보존기술과 디지털 기록의 경험을 국제사회와 나누는 일도 이어가야 한다. 몇 건의 유산을 더 등재했는가만으로 세계유산강국을 말해서는 안 된다. 이미 등재된 유산을 얼마나 잘 관리하고 있는지, 기후위기와 개발압력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역주민이 보존의 주체로 참여하는지까지 함께 평가돼야 한다. 등재강국에서 관리강국으로 가야 한다. 보유의 자부심에서 책임의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회의장은 곧 비워지고 대표단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다. 그러나 세계 곳곳의 유산 현장에서는 다시 긴 시간이 시작된다. 보존계획을 고치고 위험을 점검하며, 주민과 협의하고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는 시간이다. 회의의 시간은 열흘 남짓이지만 세계유산의 시간은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세계유산의 진짜 시간은 등재 이후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책임지는 것은 정부와 지방정부, 전문가와 지역공동체, 시민 모두다. 이 글을 끝으로 [도시와 유산을 읽는 법] 시즌2의 여정을 마친다. 오래된 장소를 읽는 일은 결국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묻는 일이었다. 도시는 계속 변하고, 유산의 시간도 우리 안에서 이어질 것이다.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인문 논픽션 작가다. 오래된 장소를 오늘의 사람들이 다시 걷고 머물고 기억하게 만드는 일을 20년 넘게 현장에서 고민해왔다. 문화유산과 도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는 장면을 기록하며, 장소에 남은 시간의 결이 오늘의 도시에서 어떤 표정으로 되살아나는지를 질문해왔다. 현재 헤리티지랩(Heritage LAB) 소장으로 도시 장면 설계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미다스북스에서 펴낸 『K-헤리티지, 매력 도시 디자인』과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가 있다. 글로벌 IT 미디어 지디넷코리아에서 [도시와 유산을 읽는 법]을 연재하며, 장소의 시간과 도시의 표정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2026.07.28 19:32이창근 컬럼니스트

[기고] 기억되는 도시, 회의가 아니라 인상으로 남는다

이 시리즈는 오래된 장소를 과거의 흔적으로만 보지 않고 오늘의 도시가 다시 읽어야 할 문화자산으로 바라보는 연재입니다. 시즌1이 도시와 유산을 전략과 경험, 콘텐츠의 관점에서 읽었다면, 시즌2는 세계유산과 오래된 장소를 도시의 기억, 감각, 표정의 언어로 다시 해석합니다. 사람은 유산의 이름보다 그 도시를 걸었던 감각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이번 시즌은 인문 에세이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의 시선을 바탕으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부산 벡스코, 2026년 7월 19~29일)와 민선 9기 지방정부 출범을 함께 바라보며 도시와 유산이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읽어냅니다. 시즌2는 2026년 6월 29일부터 7월 31일까지 주 1~2회씩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국제회의는 기록으로 남는다. 회의가 열린 날짜와 장소, 참석한 나라와 기관, 채택된 선언과 결정문이 공식 문서에 적힌다. 언론은 주요 장면을 보도하고, 개최도시는 참가자 수와 경제적 효과를 성과로 정리한다. 그러나 한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사람들은 회의의 모든 안건이나 발표자의 문장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회의장으로 향하던 아침의 공기와 갑자기 내린 여름비, 낯선 언어가 오가던 거리, 일정을 마치고 바라본 바다와 도시의 불빛을 기억한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 부산에서도 그랬다. 세계 각국의 대표단과 국제기구, 자문기구와 전문가들이 벡스코에 모여 세계유산의 등재와 보존, 관리와 국제협력을 논의했다. 회의장 안에서 유산은 협약과 규범, 보고서와 결정의 언어로 존재했다. 그러나 회의장을 나서면 부산이라는 도시가 시작됐다. 회의장을 나서면 도시가 보인다 부산은 오래된 왕도나 성곽도시처럼 하나의 역사적 이미지로 설명되는 곳이 아니다. 바다와 항만, 전쟁과 피란, 이주와 산업화, 오래된 원도심과 빠르게 성장한 해양도시의 시간이 한 장면 안에 겹쳐 있다. 높은 건물 사이로 수평선이 보이고, 항만과 시장, 철길과 생활공간이 가까이 놓여 있다. 도시의 속도는 빠르지만 바다 앞에서는 시선이 잠시 멀어진다. 부산시는 이번 세계유산위원회를 벡스코 안의 국제회의로만 두지 않았다. 개최도시 부산관과 전시·공연, 피란수도 부산유산 필드트립과 시민아카데미, 국가유산 야행을 도시 곳곳에 연결했다. 시민 서포터즈와 어린이기자단, 자원봉사자도 참여했다. 회의의 공식 의제를 시민의 길과 문화, 도시의 경험으로 넓히려는 시도였다. 도시의 기억은 대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숙소에서 회의장으로 향하던 길, 지하철과 택시 안에서 바라본 풍경, 일정을 마치고 걸었던 거리, 처음 맛본 음식과 우연히 마주친 사람의 표정이 하나씩 남는다. 사람은 도시를 지도처럼 기억하지 않는다. 걸었던 길과 머물렀던 장소, 한동안 시선을 멈추게 한 장면을 통해 기억한다. 부산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산이다 부산의 인상은 바다와 야경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은 1천23일 동안 피란수도의 역할을 했다. 국가 기능을 유지하고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을 품었으며, 국제원조와 외교가 작동하는 관문이 됐다. 그 시간은 오늘날 임시수도기념관과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부산항 제1부두와 영도대교, 복병산배수지, 아미동 비석마을과 우암동 소막마을, 부산시민공원과 재한유엔기념공원 등에 남아 있다. 부산시가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은 이렇게 도시 곳곳에 흩어진 11개 구성유산으로 이뤄져 있다. 각각의 장소는 떨어져 있지만 국가 기능의 유지와 피란민의 생활, 국제협력과 인도주의라는 하나의 역사로 이어진다. 세계유산위원회 기간 열린 '피란수도 부산 국가유산 야행'의 주제는 '기억의 도시 부산, 감정의 유산을 걷다'였다. 영도대교와 부산근현대역사관, 부산기상관측소 등을 따라 걷고, 보고, 듣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영도대교 야간 도개와 미디어파사드, 원도심 도보여행과 지역예술가의 공연도 이어졌다. 유산은 걸을 때 거리로 다가오고, 머무를 때 장소가 된다.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비로소 기억이 된다. 좋은 유산 경험은 많은 정보를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한 장소에 쌓인 시간을 제대로 이해하고, 오늘의 사람이 그 의미를 자신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다. 개최도시의 진짜 유산 국제회의를 개최한 도시는 방문객과 숙박, 소비와 경제적 파급효과를 성과로 말한다. 국제적 인지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도 평가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회의가 끝난 뒤 도시에 남아야 할 것은 숫자만이 아니다. 그 도시를 찾은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어떤 표정으로 기억하는지, 시민이 자신의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게 됐는지, 다시 걷고 싶은 장소가 생겼는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부산시는 이번 회의를 계기로 글로벌 헤리티지 포럼의 정례화와 유네스코 카테고리2센터 설립 검토,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 등 후속 과제를 제시했다. 국제회의의 경험을 도시의 장기적인 유산정책으로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도시의 유산은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회의를 다녀간 사람의 기억, 시민이 오래된 장소를 다시 바라본 경험, 도시 안에 새로운 대화가 생긴 시간이 함께 쌓여야 한다. 개최도시의 진짜 유산은 회의시설에만 있지 않다. 그 시간을 도시가 어떤 장면으로 남겼는가에 있다. 시즌2 정규 연재를 마치며 이번 시즌에서 종묘는 고요로 시간을 말했고, 창덕궁은 아름다움으로 질서를 드러냈다. 성곽은 선으로 도시의 성격을 보여줬으며, 산사와 서원은 머무름으로 장소의 깊이를 전했다. 제주는 땅으로 섬의 긴 시간을 들려줬다. 서로 다른 장소였지만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오래된 장소는 오늘의 사람에게 어떤 감각으로 남는가. 유산의 이름과 등재기준은 장소의 가치를 설명한다. 그러나 그 장소를 오래 기억하게 하는 것은 사람이 그곳에서 경험한 걸음과 시선, 빛과 공기, 멈춤과 머무름이다. 세계유산을 가진 도시와 세계유산으로 기억되는 도시는 다르다. 전자가 제도와 사실이라면 후자는 사람의 경험이다. 부산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도 언젠가는 도시의 한 시간이 된다. 대표단은 돌아가고 벡스코는 다음 행사를 준비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부산은 세계유산을 논의한 도시이면서, 회의를 마친 뒤 바다를 바라봤던 장소로 남을 것이다. 회의는 공식 기록으로 남지만 도시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 계속된다. 기억되는 도시는 회의가 아니라 인상으로 남는다. [도시와 유산을 읽는 법] 시즌2 정규 연재는 여기서 걸음을 멈춘다. 다만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가 남긴 보존과 책임의 과제는 마지막 특집회에서 한 번 더 살펴보려 한다.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인문 논픽션 작가다. 오래된 장소를 오늘의 사람들이 다시 걷고 머물고 기억하게 만드는 일을 20년 넘게 현장에서 고민해왔다. 문화유산과 도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는 장면을 기록하며, 장소에 남은 시간의 결이 오늘의 도시에서 어떤 표정으로 되살아나는지를 질문해왔다. 현재 헤리티지랩(Heritage LAB) 소장으로 도시 장면 설계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미다스북스에서 펴낸 『K-헤리티지, 매력 도시 디자인』과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가 있다. 글로벌 IT 미디어 지디넷코리아에서 [도시와 유산을 읽는 법]을 연재하며, 장소의 시간과 도시의 표정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2026.07.28 10:12이창근 컬럼니스트

[기고] 산사와 서원에서는 왜 생각도 천천히 걷게 되는가

이 시리즈는 오래된 장소를 과거의 흔적으로만 보지 않고 오늘의 도시가 다시 읽어야 할 문화자산으로 바라보는 연재입니다. 시즌1이 도시와 유산을 전략과 경험, 콘텐츠의 관점에서 읽었다면, 시즌2는 세계유산과 오래된 장소를 도시의 기억, 감각, 표정의 언어로 다시 해석합니다. 사람은 유산의 이름보다 그 도시를 걸었던 감각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이번 시즌은 인문 에세이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의 시선을 바탕으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부산 벡스코, 2026년 7월 19~29일)와 민선 9기 지방정부 출범을 함께 바라보며 도시와 유산이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읽어냅니다. 시즌2는 2026년 6월 29일부터 7월 31일까지 주 1~2회씩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좋은 장소는 사람을 서두르게 하지 않는다. 도시에 오래 살수록 우리는 빠른 길을 찾는다. 가장 가까운 출입구, 가장 짧은 동선, 가장 효율적인 이동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 기억되는 장소는 대개 다른 속도로 다가온다. 그곳에서는 빨리 보는 것보다 천천히 머무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산사와 서원이 그렇다. 그곳에 들어서면 먼저 걸음이 낮아진다. 크게 외치는 안내보다 나무 그늘이 먼저 보이고, 건물의 규모보다 마당의 비움이 먼저 느껴진다. 길은 곧장 목적지로 데려가지 않는다. 조금 돌아가게 하고, 잠시 멈추게 하고, 주변의 산세와 물길과 바람을 먼저 보게 한다. 종묘가 고요로 시간을 말하고, 창덕궁이 아름다움으로 질서를 말했으며, 성곽이 선으로 도시의 성격을 드러냈다면, 산사와 서원은 머무름으로 장소의 깊이를 말한다. 산사는 산속에 있지만 세상과 끊어진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잠시 세상 밖으로 데려가 다시 세상과 마주하게 한다. 일주문을 지나고, 숲길을 걷고, 계단을 오르고, 마당에 들어서는 동안 사람의 몸은 조금씩 다른 리듬을 받아들인다. 산사는 건축만으로 읽히지 않는다. 산길, 물소리, 처마, 마당, 종소리, 그리고 산세가 함께 하나의 장소 감각을 만든다. 서원도 마찬가지다. 서원은 학문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단지 공부방의 집합은 아니다. 그그곳에는 배움의 질서와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조용히 남아 있다. 강당과 사당, 누정과 마당, 담장 너머의 산수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학문은 책상 위에만 있지 않고, 걷고 바라보고 머무는 방식 속에 놓인다. 산사와 서원이 오래 남는 이유는 화려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과하지 않기 때문에 오래 남는다. 큰 소리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고,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장소의 깊이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시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생긴다. 오늘의 관광은 종종 빠르다.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어떤 사진을 남겼는지가 먼저 소비된다. 그러나 오래된 장소의 힘은 빠른 소비와 잘 맞지 않는다. 산사와 서원은 많이 보는 곳이 아니라 천천히 머무는 곳이다. 그곳에서 사람은 유산을 관람하기보다 자기 속도를 잠시 내려놓는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부산에서 열리는 올해, 한국의 산사와 불교문화유산도 여러 방식으로 세계인 앞에 소개된다. 대한민국관에서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과 해인사 장경판전, 통도사, 영산재와 수륙재, 사찰음식 등이 전시와 공연, 체험의 언어로 펼쳐진다. 부산근교 세계유산 필드트립 역시 통도사 같은 산사 현장으로 이어진다. 회의장 안에서 말해지는 세계유산은 현장의 길과 마당, 숲과 의례의 시간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다만 유산의 깊이는 프로그램의 수로만 전해지지 않는다. 그 장소가 지닌 고요와 여백, 걷고 머무는 속도까지 함께 지켜낼 때 유산의 깊이는 비로소 전해진다. 산사의 시간은 설명만으로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그곳에 직접 가서 걷고, 멈추고, 바라보는 동안 세계유산은 비로소 몸의 감각으로 이해된다. 세계유산을 더 많이 보여주는 것보다, 그 유산 앞에서 사람이 어떤 속도로 멈추고 생각하게 할 것인가. 그 질문이 더 깊다. 민선 9기 지방정부가 문화와 관광을 말할 때도 이 감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지역의 유산을 콘텐츠로 만든다는 것은 더 많은 장식을 붙이는 일이 아니다. 장소가 가진 속도를 해치지 않으면서 오늘의 사람이 그 시간을 경험하게 하는 일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방문객을 많이 모으는 것보다, 한 번 온 사람이 오래 머물고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일이 더 깊은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좋은 도시는 빠른 도시만은 아니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면서도, 어느 곳에서는 걸음이 느려지는 도시가 좋은 도시다. 많은 것을 보여주면서도, 어떤 장소에서는 비워두고 기다릴 줄 아는 도시가 오래 남는다. 산사와 서원은 그 사실을 조용히 알려준다. 오래 머무는 장소에는 이유가 있다. 그곳에는 사람을 붙잡는 장식보다, 사람의 속도를 바꾸는 질서가 있다. 소리보다 고요가 먼저 오고, 설명보다 공기가 먼저 닿으며, 풍경보다 태도가 오래 남는다. 세계유산은 그런 장소의 이름이어야 한다. 오래된 장소를 오늘의 사람들이 다시 걷고, 머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름. 도시와 지역이 자기 시간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고, 천천히 이어가겠다는 약속. 산사와 서원은 그 약속을 가장 낮은 목소리로 보여주는 장소다.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인문 논픽션 작가다. 오래된 장소를 오늘의 사람들이 다시 걷고 머물고 기억하게 만드는 일을 20년 넘게 현장에서 고민해왔다. 문화유산과 도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는 장면을 기록하며, 장소에 남은 시간의 결이 오늘의 도시에서 어떤 표정으로 되살아나는지를 질문해왔다. 현재 헤리티지랩(Heritage LAB) 소장으로 도시 장면 설계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미다스북스에서 펴낸 『K-헤리티지, 매력 도시 디자인』과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가 있다. 지디넷코리아에서 [도시와 유산을 읽는 법]을 연재하며, 장소의 시간과 도시의 표정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2026.07.16 18:00이창근 컬럼니스트

[기고] 성곽은 도시의 성격이다

이 시리즈는 오래된 장소를 과거의 흔적으로만 보지 않고 오늘의 도시가 다시 읽어야 할 문화자산으로 바라보는 연재입니다. 시즌1이 도시와 유산을 전략과 경험, 콘텐츠의 관점에서 읽었다면, 시즌2는 세계유산과 오래된 장소를 도시의 기억, 감각, 표정의 언어로 다시 해석합니다. 사람은 유산의 이름보다 그 도시를 걸었던 감각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이번 시즌은 인문 에세이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의 시선을 바탕으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부산 벡스코, 2026년 7월 19~29일)와 민선 9기 지방정부 출범을 함께 바라보며 도시와 유산이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읽어냅니다. 시즌2는 2026년 6월 29일부터 7월 31일까지 주 1~2회씩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성곽이 있는 도시에 들어서면 먼저 선이 보인다. 그 선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처럼 보인다. 성벽은 도시를 두르고, 성문은 출입을 가르고, 높은 곳의 장대는 도시를 내려다본다. 처음에는 성곽을 방어시설로 이해하게 된다. 적을 막고, 도시를 지키고, 안쪽의 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벽.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성곽을 따라 걸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성곽은 단지 도시를 막아선 벽이 아니다. 그 선은 도시를 걷게 하고, 도시를 다시 보게 하며, 도시가 어디에서 자기 표정을 갖는지를 알려준다. 성곽은 경계이면서 동시에 길이다. 막기 위해 세운 구조가 오늘에는 도시를 읽게 하는 선이 된다. 종묘가 고요로 시간을 말하고, 창덕궁이 아름다움으로 질서를 말한다면, 성곽은 선으로 도시의 성격을 말한다. 성곽은 도시의 외곽선이다. 그러나 단순한 가장자리는 아니다. 그 선을 따라 걷다 보면 도시의 중심과 주변, 안과 밖, 높은 곳과 낮은 곳이 함께 읽힌다. 어느 지점에서는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고, 어느 지점에서는 성 밖의 풍경이 열린다. 성곽은 도시를 안쪽에서만 보지 않게 한다. 도시를 둘러보게 하고, 동시에 도시가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를 묻게 한다. 성곽은 걷는 유산이다. 건물은 한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지만, 성곽은 한 자리에서 다 읽히지 않는다. 성문 하나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장대 하나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성벽을 따라 걸어야 한다. 길이 꺾이는 곳에서 도시의 방향을 느끼고, 높이 오른 곳에서 안팎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다시 생활권 가까이 내려오며 성곽이 오늘의 도시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수원화성을 떠올리면 이 감각은 더 분명해진다. 수원화성은 성곽만 따로 떨어져 남아 있는 유산이 아니다. 성문과 수문, 장대와 공심돈, 성벽과 길, 성 안팎의 도시가 함께 읽힐 때 비로소 살아난다. 성곽은 도시를 둘러싼 벽이지만, 오늘의 사람에게는 도시를 걷게 하는 길이 된다. 그 길 위에서 사람은 유산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자세를 몸으로 익힌다. 좋은 성곽은 성벽만 남기지 않는다. 도시의 골격을 남긴다. 어디가 중심이고 어디가 입구인지, 무엇이 안과 밖을 나누는지, 사람들이 어떤 방향으로 모이고 흩어졌는지, 어느 지점에서 도시가 가장 자신다운 표정을 갖는지가 성곽을 통해 드러난다. 성곽은 도시의 겉모양이 아니라 도시의 자세를 만든다. 성곽길은 목적지보다 시선을 바꾼다. 빠르게 지나가는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성곽길에서는 보인다. 성벽의 굴곡, 돌의 결, 문을 지나는 리듬, 길의 높낮이, 멀리 산과 하늘이 이어지는 방향 같은 것들이다. 성곽을 걷는 동안 사람은 도시를 정보로 이해하기보다 몸의 감각으로 받아들인다. 성곽은 도시를 설명하기보다 먼저 걷게 한다. 성곽은 역설적인 유산이다. 처음에는 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오늘에는 열어주는 장소가 되었다. 적을 막기 위한 벽이었지만, 지금은 사람에게 도시 전체를 바라보게 하는 길이 된다. 과거의 방어 구조가 오늘의 보행 경험이 되고, 경계의 장치가 도시를 이해하는 시선의 장치가 된다. 수원화성이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성곽은 과거의 구조물로만 남아 있지 않다. 오늘의 도시와 함께 호흡한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는 역사적 구조가 보이고, 어느 지점에서는 생활의 거리와 맞닿는다. 성곽 안팎에는 사람들이 살고, 걷고, 머물고, 다시 찾아온다. 수원화성은 과거의 성곽이면서 오늘의 도시 동선이다. 성곽은 경계였지만, 오늘에는 관계가 된다. 성 안과 성 밖, 과거와 현재, 유산과 생활, 방어와 산책, 구조와 감상이 성곽 위에서 만난다. 이 만남이 성곽을 단순한 유적으로 머물지 않게 한다. 성곽이 좋은 유산이 되려면 성벽이 잘 남아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이 그 선을 따라 걷고, 도시를 다시 바라보고, 그 장소가 남긴 시간의 방향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세계유산도 마찬가지다. 이름과 등재기준만으로는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어떤 유산은 사람의 동선을 바꾸고, 도시의 시선을 바꾸며, 다시 걷고 싶은 길로 남는다. 성벽은 오래된 구조물이지만, 성곽길은 오늘의 사람이 유산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부산에서 열리는 올해, 우리는 세계유산을 다시 말하게 된다. 그러나 세계유산을 말한다는 것은 등재의 이름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수원화성이 보여주듯, 장소의 가치는 성벽의 보존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성벽이 오늘의 도시 안에서 어떤 길이 되고, 어떤 시선이 되며, 어떤 기억의 선으로 이어지는지까지 함께 물어야 한다. 좋은 유산 도시는 유산을 고립시키지 않는다. 성곽을 배경으로만 두지 않고, 도시를 읽는 길로 살린다. 사람을 다시 걷게 하고, 도시를 다른 높이에서 바라보게 하며, 과거의 경계가 오늘의 경험이 되도록 한다. 그런 도시에서 성곽은 과거의 방어시설이 아니라 현재의 도시 감각이 된다. 성곽이 도시의 성격이 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걸음걸이가 있듯, 도시에도 자세가 있다. 어떤 도시는 광장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어떤 도시는 강이나 바다로 기억된다. 어떤 도시는 산세와 골목으로 남고, 어떤 도시는 성곽의 선으로 자기 성격을 만든다. 성곽은 도시를 지킨 벽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성곽은 도시를 기억하게 하는 선이다. 그 선을 따라 걷는 동안 우리는 도시가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무엇을 중심에 두었는지, 어디에서 자신다운 표정을 만들었는지를 느끼게 된다. 성곽은 도시의 바깥을 두른 구조물이 아니라 도시의 성격을 드러내는 문장이다. 성곽을 읽는다는 것은 방어의 역사를 읽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한 도시가 어떤 자세로 자신을 둘러싸고, 어떤 길로 사람을 걷게 하며, 어떤 시선으로 스스로를 기억하게 하는지를 읽는 일이다. 세계유산은 오래 남은 돌에만 있지 않다. 우리가 그 도시를 어떻게 걷고,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기억하게 되는가에도 있다. 성곽은 도시를 지킨 경계였지만, 오늘에는 도시를 걷게 하는 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 걸을 때, 도시는 비로소 자기 성격을 드러낸다.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인문 논픽션 작가다. 오래된 장소를 오늘의 사람들이 다시 걷고 머물고 기억하게 만드는 일을 20년 넘게 현장에서 고민해왔다. 문화유산과 도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는 장면을 기록하며, 장소에 남은 시간의 결이 오늘의 도시에서 어떤 표정으로 되살아나는지를 질문해왔다. 현재 헤리티지랩(Heritage LAB) 소장으로 도시 장면 설계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미다스북스에서 펴낸 『K-헤리티지, 매력 도시 디자인』과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가 있다. 지디넷코리아에서 [도시와 유산을 읽는 법]을 연재하며, 장소의 시간과 도시의 표정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2026.07.10 18:00이창근 컬럼니스트

[기고] 종묘의 시간은 왜 아직도 현재형인가

이 시리즈는 오래된 장소를 과거의 흔적으로만 보지 않고 오늘의 도시가 다시 읽어야 할 문화자산으로 바라보는 연재입니다. 시즌1이 도시와 유산을 전략과 경험, 콘텐츠의 관점에서 읽었다면, 시즌2는 세계유산과 오래된 장소를 도시의 기억, 감각, 표정의 언어로 다시 해석합니다. 사람은 유산의 이름보다 그 도시를 걸었던 감각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이번 시즌은 인문 에세이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의 시선을 바탕으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부산 벡스코, 2026년 7월 19~29일)와 민선 9기 지방정부 출범을 함께 바라보며 도시와 유산이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읽어냅니다. 시즌2는 2026년 6월 29일부터 7월 31일까지 주 1~2회씩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종묘에 들어서면 먼저 걸음이 달라진다.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종묘 안에서는 시간이 조금 낮게 흐른다. 담장을 지나고 나무 사이 길을 걷다 보면 바깥의 소음은 조금씩 뒤로 물러난다. 넓게 비워진 월대 앞에 서면 목소리는 낮아지고, 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종묘는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먼저 시선을 붙잡기보다 사람의 속도를 바꾼다. 무엇을 더 드러내기보다 덜어내고, 낮추고, 비워둔다. 그래서 그곳의 첫인상은 화려함이 아니라 고요다. 그리고 그 고요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오래된 장소의 힘은 이런 순간에 드러난다. 설명을 듣기 전부터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종묘의 아름다움은 장식에 있지 않다. 긴 처마선, 반복되는 기둥, 넓은 월대, 정면으로 이어지는 건축의 리듬은 보는 사람에게 하나의 질서를 느끼게 한다. 그 질서는 크고 웅장해서가 아니라 고요하고 단정해서 오래 남는다. 종묘의 시간은 멈춰 있지 않다. 그곳은 조선왕실의 사당이지만, 단지 오래된 건축물로만 남아 있는 장소가 아니다. 종묘의 힘은 건축과 의례, 음악과 몸짓, 침묵과 반복이 함께 만들어내는 시간의 결에 있다. 건축이 의례를 품고, 의례가 음악을 부르고, 음악이 다시 장소의 공기를 바꿀 때 오래된 시간은 오늘의 장면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종묘는 한 겹의 유산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고, 그곳에서 이어지는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종묘에서는 유형의 장소와 무형의 의례, 음악과 춤이 한자리에서 이어진다. 종묘의 시간이 아직도 현재형인 이유는 바로 이 이어짐에 있다. 건축은 의례를 기다리고, 의례는 음악과 춤을 통해 장소의 시간을 다시 깨운다. 우리는 흔히 유산을 남아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건물이 남아 있고, 기록이 남아 있고, 제도가 남아 있으면 유산이 보존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된 장소는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오래된 시간도 오늘의 사람에게 닿아야 비로소 현재가 된다. 조선왕실 유산을 함께 놓고 보면 종묘의 자리는 더 선명해진다. 궁궐은 왕실의 정무와 생활이 펼쳐지던 공간이고, 조선왕릉은 왕과 왕비의 사후 기억과 제향이 이어지는 공간이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종묘대제를 이어온 공간이다. 궁궐과 왕릉, 종묘는 따로 떨어진 유적이 아니라 조선왕실의 삶과 죽음, 기억과 의례가 이어지는 하나의 시간축이다. 그 가운데 종묘는 왕조의 시간이 의례와 음악, 춤을 통해 오늘의 장면으로 돌아오는 장소다. 종묘 정전 앞에 서면 공간은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비어 있지 않다. 넓은 월대는 빈터가 아니라 시간을 받아들이는 여백처럼 느껴진다. 긴 건물은 권위를 과시하기보다 시간을 길게 펼쳐놓는다. 반복되는 칸과 기둥은 단조롭지만, 그 단조로움 때문에 오히려 깊어진다. 보이는 것이 적을수록 사람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그 시간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의례는 과거의 형식을 오늘 다시 행하는 일이다. 음악은 사라진 시간을 소리로 불러오는 일이다. 춤과 동작은 오래된 질서를 몸의 기억으로 이어가는 일이다. 이때 종묘는 건축물 하나의 이름을 넘어선다. 공간은 의례를 품고, 의례는 음악을 부르고, 음악은 다시 장소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낸다. 그래서 종묘를 읽는다는 것은 건축을 설명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사라진 시간이 어떤 형식으로 남아 있는지를 보는 일이다. 과거의 왕조는 사라졌지만, 그 시간을 대하는 태도와 형식은 장소 속에 남아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역사를 지식으로만 배우지 않는다. 오래된 질서가 사람의 걸음과 시선, 침묵과 호흡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몸으로 느낀다. 좋은 유산 공간은 정보를 많이 주기보다 잠시 다른 속도로 걷게 한다. 빠르게 이동하던 사람을 멈추게 하고, 서둘러 지나가던 시선을 한곳에 오래 머물게 한다. 종묘의 고요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함부로 다루지 않으려는 도시의 예의에 가깝다. 오늘의 도시는 더 빠른 이동, 더 많은 정보, 더 강한 자극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도시는 반드시 많은 것을 보여주는 도시가 아니다. 때로는 덜어낸 장소, 비워둔 공간, 속도를 늦추게 하는 길이 도시를 더 오래 남긴다. 종묘가 지금도 현재형인 이유는 바로 그 느린 시간의 힘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유산을 가진 도시는 적지 않다. 그러나 세계유산을 오늘의 감각으로 이어가는 도시는 많지 않다. 등재는 유산의 가치를 확인받는 일이다. 하지만 등재 이후의 도시는 더 어려운 질문 앞에 선다. 그 가치를 오늘의 사람들이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 오래된 장소를 관람 대상으로만 둘 것인가, 아니면 도시의 속도를 잠시 바꾸는 공간으로 살릴 것인가. 종묘는 그 질문에 조용히 답한다. 오래된 장소는 많은 설명보다 깊은 태도로 기억된다. 건축은 남아 있어야 하지만, 건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의례는 이어져야 하지만, 형식만 반복되어서도 안 된다. 유산은 장소와 사람, 기억과 행위, 침묵과 소리가 함께 만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시간이 된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부산에서 열리는 올해, 우리는 세계유산을 다시 말하게 된다. 그러나 세계유산을 말한다는 것은 등재의 이름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종묘가 보여주듯, 장소의 가치는 건축물에만 머물지 않고 의례와 음악, 사람의 몸짓 속에서 이어질 때 더 깊어진다. 그 이름이 오늘의 도시 안에서 어떤 경험으로 이어지는지, 시민과 방문자의 몸에 어떤 감각으로 남는지까지 함께 물어야 한다. 종묘는 그 질문을 오래된 방식으로, 그러나 가장 현재적인 감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종묘의 시간은 아직도 현재형이다. 정전이 남아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에 들어서는 사람의 걸음이 달라지고, 고요 앞에서 마음의 속도가 늦춰지고, 의례와 음악을 통해 사라진 시간이 오늘의 장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오래된 장소는 그렇게 현재가 된다. 도시는 끊임없이 바뀐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바뀌는 도시 안에서도 어떤 장소는 바뀌지 않는 속도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과거를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의 도시가 자기 시간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유산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이다. 종묘의 시간은 그래서 아직도 현재형이다. 오래된 장소를 읽는다는 것은 그 이어짐의 형식을 읽는 일이다. 그리고 오늘의 도시가 잃지 말아야 할 것도 어쩌면 그 느린 시간의 감각이다. 필자 이창근 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이자 인문 논픽션 작가다. 오래된 장소를 오늘의 사람들이 다시 걷고 머물고 기억하게 만드는 일을 20년 넘게 현장에서 고민해왔다. 문화유산과 도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는 장면을 기록하며, 장소에 남은 시간의 결이 오늘의 도시에서 어떤 표정으로 되살아나는지를 질문해왔다. 현재 헤리티지랩(Heritage LAB) 소장으로 도시 장면 설계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미다스북스에서 펴낸 『K-헤리티지, 매력 도시 디자인』과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가 있다. 지디넷코리아에서 [도시와 유산을 읽는 법]을 연재하며, 장소의 시간과 도시의 표정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2026.07.03 18:00이창근 컬럼니스트

건국대 건축학부 백한열 교수, 한국도시설계학회 학술상 수상

건국대학교(총장 원종필)는 건축대학 건축학부 백한열 교수가 최근 열린 '2026 한국도시설계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학술상을 수상했다고 28일 밝혔다. 한국도시설계학회 학술상은 도시설계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둔 연구자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지난 한 해 학회에 발표된 논문 가운데 학문적 완성도와 창의성 분야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된다. 백한열 교수 연구팀은 '15분 도시 개념을 적용한 도시설계 연구' 논문을 통해 도시 발전 전략으로 제시돼 온 '15분 도시' 개념을 실제 도시설계에 적용 가능한 구체적 요소로 도출하고, 대학 설계 스튜디오와 연계한 계획안에 적용해 활용 가능성을 검증했다. '15분 도시'는 시민 누구나 보행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15분 이내에 문화·의료·교육·복지·여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를 조성하는 개념으로, 생활 편의성과 공동체 기반을 강화해 삶의 질을 높이는 도시 발전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는 도시설계 이론의 확장과 함께 실무 적용 가능성을 동시에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백한열 교수는 “이번 연구는 현대 도시의 복합적인 문제를 보다 전략적으로 해석하고, 새로운 개념을 실제 설계에 적용하기 위한 시도였다”며 “앞으로도 도시와 건축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연구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2026.04.28 09:20주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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