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臺·日은 정부가 밀어주는데 한국은 '각자도생'
미국, 대만에 이어 일본까지 가세한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에서 한국이 기술 초격차를 확보하려면 첨단 패키지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천안, 온양 반도체 패키지 사업장을 방문한 것도 후공정 기술을 미래 먹거리로 중시한다는 행보로 해석된다. 지디넷코리아가 3회에 걸쳐 국내 반도체 패키지 산업 현황을 긴급 점검하고 우리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반도체 첨단 패키지가 미세공정에서 핵심 기술로 떠오르면서 미국, 대만, 일본 등 각 국가별 정부는 후공정 공급망 강화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수 십조원 규모로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한국도 첨단 패키지 기술 개발을 위한 국가 지원과 민관 통합 정책 과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은 파운드리뿐 아니라 반도체 패키지도 지원한다. 미국 상무부는 산하에 국립 첨단 패키지 제조 연구소를 설립했고, 인력 양성을 위해 50억 달러(6조5천억 원)를 별도로 지원한다. 또 반도체 팹을 비롯한 제조, 후공정(조립·테스트)에 200억 달러(26조원)를 지원해 기술 개발을 돕는다. 미국은 지난 8월 공포된 반도체과학법(칩스법)을 통해 자국 내 반도체 설비에 투자하는 기업에 세액을 최대 25% 감면해주고, 5년간 생산과 R&D 투자 설비에 527억 달러(68조7천억원)를 지원한다. 대만은 반도체를 핵심 전략 산업으로 선정하고 첨단 제조공정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패키지와 완제품 테스트에 유리한 환경 조성에 힘쓰고 있는데, 5G, AI 반도체용 3D 적층과 이종접합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팹리스 기업에게 제품 초기 검증과 양산을 지원한다. 또 반도체에 투자한 자금에 대해 25% 세액을 공제해주고, 반도체 장비 구입에도 5% 추가 세액공제를 해준다. 일본은 자국의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기술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대만과 손을 잡았다. 일본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소재와 장비를 쉽게 확보할 수 있고, 연구 개발에 보탬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이다.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가 일본 쓰쿠바시에 소재한 경제산업성 산하 연구기관에 '3D IC 연구개발 센터'를 지은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는 해당 R&D 센터에 건설비 370억 엔(3천584억원) 중 절반을 지원했다. TSMC는 또 5나노 공정 양산을 위한 패키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패키지 기판 1위 업체인 일본 이비덴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 밖에 일본 후공정 장비 업체인 디스코, 어드밴테스트, 후가공 소재 업체인 스미토모화학 등이 TSMC와 대만 후공정 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일본 도쿄대학은 TSMC와 첨단 반도체 개발 디자인 부문에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 후공정 키우려면 "국가 R&D 정책 공공 인프라 지원 필요" 반면 한국은 반도체 경쟁국에 비해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소재, 장비를 보유한 일본과 협력도 대만처럼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반도체 시설투자시 세액공제율은 대기업 8%,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이다. 국내 반도체 후공정 업체인 하나마이크론 고용남 전무는 "국가간 반도체 보조금 지원을 비교하면 대만은 4조원, 미국은 69조원, 중국은 180조원, 한국은 0.1조원으로 취약하다"라며 "국내 기업은 각자도생해야 하며, 이런 상황 속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국내 팹리스와 패키지 기업의 기술 개발을 지원해주는 국가 통합 R&D 정책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특히 개발 기간을 고려한 정책 과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성동 서울과학기술대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교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이 첨단 기술을 갖춘 국내 소부장 업체를 찾을 때, 국내 기업 기술 수준이 본인들이 원하는 기술에 미치지 못해서 같이 개발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이런 악순환으로 국내 소부장 생태계가 완성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정부의 R&D 과제가 단기에 그치지 말고 삼성전자에 채택될 만한 기술을 갖출 수 있는 단계까지 공공 인프라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광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실장은 "통상적으로 국책 과제는 3년, 5년을 모집하는데, 기업은 그 기간 안에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예측하고도 정부 예산을 따기 위해 지원한다. 이 룰을 바꿔야 한다. 누군가는 장기적으로 개발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결실이 나왔을 때 그 기술을 사용하는 R&D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