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
올해 초 달리기를 시작했다. 건강에 빨간 불이 들어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시작한 게 달리기였다. 운동화와 옷차림, 그저 뛰기만 하니 단출하다 싶었다. 그렇게 퇴근 후나 주말 아침마다 집 앞 공원에 나가 달렸다. 처음에는 숨이 차 뛰다 서다를 반복했다. 즈음에 금연을 시작해 폐활량이 향상되자 점차 뛸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났다. 봄부터 뛰기 시작한 것이 여름과 가을을 거쳐 겨울까지 왔다. 달리기가 좋았던 이유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뛰다보면 사방은 조용해지고 거친 숨소리와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우게 된다. 그 고요하고 건강한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몸이 익숙해지자 욕망도 자라났다. 더 뛰기 좋은 코스에서 뛰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공원 트랙에서 산 둘레길로 코스를 바꿨다. 아름다운 풍경, 나무와 풀, 꽃 냄새가 만족스러웠다. 단순해보여 시작한 운동이건만 욕망은 계속 커진다. 더 좋은 운동화를 갖고 싶고, 기능이 많은 운동복도 사고 싶었다. 하다하다 장갑에, 스마트폰을 보관할 포켓까지 구매하고 나서도 성에 차질 않아 다른 러너의 '장비'를 흘깃댔다. 뛰다보면 멀리 오르막길이 보일 때가 게 더 힘들다. 오르막을 벗어나기 직전 정상에 다다르기 이전은 몸이 천근만근이다. 이제 내리막에 이르면 힘든 건 줄어들지만 무릎이 시큰거렸다. 그럴 때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편안하다고 정신을 놓으면 부상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짧게는 며칠, 길면 몇 주 동안 달릴 수 없게 된다. 트랙이든 둘레길이든 숨이 차고 힘든 건 똑같지만, 그래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야 더 뛰는 맛이 난다. 오르막을 달릴 때는 포기하지 않도록 속도를 줄이면 도움이 됐다. 내리막도 보폭을 좁히고 속도를 줄여 무릎의 부담을 줄이면 좋다. 사실 길은 그대로이고, 러너는 그 길 위를 달리다 서다를 반복할 뿐이다. 남의 것을 질투해보아도 뛰고 나면 다 똑같다. 아무것도 아니다. 힘든 일은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데, 너무 힘든 순간이 왔다면 이제는 괜찮아진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래서 달리기는 사는 것을 닮았다. 기자의 길에 들어선 지도 십 수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런저런 욕망을 내려놓지 못했다. 욕망은 나를 옭아매는 그물로, 때로는 바늘이 되어 가슴을 찔렀다. 앞으로도 기사는 더 힘을 잃을 것이고, 포털과 정책, 자본은 언론인들을 사방으로 옥죌 것이다. 더는 기사가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세상일에 기쁨이나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데. 누군가를 공감할 여력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은데. 욕망이 들끓는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좌절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달리기가 삶과 닮은 이유는 또 있다. 더러 주저앉고 멈추거나 길을 잃은 기분으로 목표 없이 나아간다고 느낄 때조차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쨌든 계속 달릴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