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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단종된 게임 보존과 활용' 세미나 개최…"국가 게임유산 허브 도약"

소멸 위기에 처한 국내 단종 게임을 국가적 차원의 '디지털 문화유산'으로 격상하고 영구 보존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의 장이 열렸다. 국립중앙도서관은 22일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단종 게임 보존과 활용'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지난 14일 개막한 '단종 한국 게임, 다시 켜다' 전시와 연계해 마련됐으며, 학계와 산업계 등 전문가들이 참석해 게임 유산의 체계적인 수집과 보존 방안을 모색했다. 이번 전시는 도서관이 1980년대부터 수집해 온 자료를 바탕으로 단종·미발매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집중 조명했다. 특히 잡지 기록으로만 남았던 1990년대 미출시 게임 '그날이 오면'을 인공지능(AI)으로 재현해 최초 공개하고, 관람객 참여형 게임 복원 체험존을 운영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김경철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보존연구센터장은 개회사를 통해 "게임은 이 시대의 기술과 감성, 우리 사회의 기억이 응축된 디지털 문화유산"이라며 "국산 게임들이 하나둘 단종되고 잊혀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이대로 사라지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오늘 자리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사라지는 K-게임…'납본 법제화'와 제도 정비 시급 첫 발제자로 나선 이정엽 순천향대 교수는 1980년대 애플2 기반 게임부터 피처폰 모바일 게임까지 약 6만 5000종의 단종 게임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한 성과를 발표했다. 이 교수는 국산 게임과 한글화 소프트웨어를 최우선 수집 대상으로 지정하고, 국립중앙도서관의 표준목록형식(MODS)과 연계할 수 있는 22개 항목의 게임 메타데이터 표준안을 도출했음을 밝혔다. 이 교수는 보존을 위한 핵심 해결책으로 '게임 소프트웨어 납본 법제화'를 강하게 피력했다. 그는 "독일의 경우 물리적·비물리적 형태의 게임 50종을 정부에 의무적으로 납본하도록 법제화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납본 법제화가 이뤄진다면 예산 한계를 극복하고 사라지는 게임들을 국가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실물 원본 매체의 열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에뮬레이터 등을 결합한 대안적 보존 모델의 필요성을 덧붙였다. 이어 단상에 오른 윤대진 게임문화재단 게임문화진흥팀장은 게임의 인문학적·사회적 가치를 조명하며, 소멸 위기에 놓인 K-게임 유산을 지키기 위한 공공의 제도적 결단을 촉구했다. 윤 팀장은 "게임은 종합예술이자 현대인의 삶과 철학이 담긴 디지털 문화유산"이라며 "한국은 30년 만에 거대 게임 산업국으로 성장했지만, 화려한 역사에 비해 그 실체인 유산은 체계적으로 보존되지 못해 사라져가는 역설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서버 종속성과 복잡한 저작권 문제로 인해 서비스 종료 시 게임이 영구 소멸하는 '디지털 다크에이지' 현상을 지적했다. 보존의 산업적 가치도 함께 강조했다. 윤 팀장은 "과거의 훌륭한 유산은 미래 산업을 키우는 자산"이라며 "'창세기전'이 계속 리메이크되며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듯, 과거의 유산 없이는 새로운 혁신도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윤 팀장은 이 같은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라인 게임 맞춤형 디지털 납본 제도 도입 ▲서비스 종료 게임에 대한 에뮬레이터 저작권 면책권 부여 ▲전담 거점 기관 설립 ▲자발적 기증을 유도할 세제 혜택 등 4대 정책 과제를 제안했다. 그는 "법 제도 정비부터 전담 기구 설계까지, 지금이 바로 이 과제들을 내실 있게 들여다보고 수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객체 넘어 플레이어 경험까지…'평창 게임갤러리'로 이어지는 보존 로드맵 민간 현장의 생생한 아카이빙 실무 경험도 공유됐다. 박두산 넥슨뮤지엄 관장은 "게임은 책이나 영화처럼 고정된 하나의 '객체(원본)'로 존재하지 않으며, 플레이어의 개입과 상호작용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매체"라고 정의했다. 박 관장은 국내 최초의 그래픽 MMORPG '바람의나라 1996' 초기 버전 복원 프로젝트를 사례로 들며, 단순한 데이터 백업을 넘어선 '경험 보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어렵게 당시의 클라이언트와 서버 데이터를 모아 구동 가능한 상태로 복원했지만, 당시의 플레이 경험이나 문화적 임팩트까지 온전히 살려내지는 못했다"며 "최소한의 유저 수가 확보되지 않아 게임 내 상호작용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게임 아카이빙은 기기나 소프트웨어라는 객체 자체를 물리적으로 보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경쟁하며, 협력하는지 등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의 경험까지 함께 기록하고 조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마지막 발제자인 이연수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는 '단종 한국 게임, 다시 켜다' 전시 기획의 뒷이야기와 실무적 보존 과정을 소개했다. 이 학예사는 "플로피디스크 같은 구형 매체의 열화를 막기 위해 케이스를 교체하고 데이터를 추출하는 물리적 보존 작업부터, 미발매 게임 '그날이 오면'을 AI 기술로 재현하는 작업까지 도서관 내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도서관을 넘어 국가 단위의 '게임유산 아카이빙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하며 3단계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2026년 도서관과 민간, 학계, 문체부가 참여하는 '게임 보존협력 거버넌스' 출범을 시작으로, 2027년에는 게임 종합목록 DB를 본격 구축하고 기증·위탁 관리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2028년 이후에는 평창 국가문헌보존관 내에 '평창 게임갤러리(PGG)'를 구축해 디지털 문화유산의 수집과 보존, 전시를 아우르는 국가 게임유산 허브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2026.07.22 17:26정진성 기자

소니 'PS 게임 실물 디스크' 단종 반대 서명 26만명 돌파…캐나다 소매점 주도

소니가 오는 2028년 1월 플레이스테이션(PS) 실물 디스크 생산을 전면 중단할 계획인 가운데, 이를 반대하는 글로벌 서명 운동이 26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며 거세게 확산하고 있다. 10일 글로벌 청원 사이트 체인지에 따르면 캐나다 독립 게임 소매점 PNP 게임즈가 주도한 '디스크를 죽이지 마라(Don't Kill the Disc)' 청원 참여자는 현재 26만 4000명을 넘어섰다. 앞서 게임스팟 등 주요 외신은 9일(현지시간) 해당 청원 참여자가 23만명을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보도 이후 하루 만에 3만명 이상이 추가로 서명에 동참하며 차세대 콘솔의 실물 매체 유지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제이드 피어스 PNP 게임즈 최고경영자(CEO)는 외신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이 여전히 실물 매체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우리의 믿음을 확인시켜 줬다"며 "실물 매체 종료는 소비자 선택권을 없애고 지역 경제를 약화하며, 플랫폼 홀더에게 통제권을 넘겨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측은 디지털 판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고 강조했다. 피어스 CEO는 "실물 매체 수요는 여전히 확고하다"며 "실물 매체가 스스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수요가 있음에도 강제로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원에 참여한 서명자 다수는 소니의 결정이 향후 플레이스테이션 제품 구매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신은 소비자들이 완전한 디지털 미래로 내몰린다면 차라리 PC를 구매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2026.07.10 10:04정진성 기자

닌텐도 스위치, 2027년 유럽서 단종…EU 배터리 규제 여파

닌텐도 스위치 기존 모델이 유럽 연합(EU)의 새로운 배터리 규제 여파로 오는 2027년 유럽 시장에서 단종된다고 게임스팟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닌텐도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오는 2027년 2월 중순 이후 유럽 소매점에 스위치, 스위치 라이트, 스위치 OLED 모델의 공급을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같은 달 유럽 닌텐도 스토어에서도 해당 모델들의 판매가 일제히 종료된다. 이는 사용자가 직접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도록 제품을 설계해야 한다는 EU의 새로운 규제에 따른 조치다. 외신은 수명 주기가 막바지에 이른 기존 스위치의 설계를 변경하는 것은 비용 효율성이 떨어져 닌텐도가 단종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미 시장의 단종 시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닌텐도는 유럽의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 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이르면 올여름부터 교체형 배터리를 탑재한 '스위치2' 모델을 새롭게 선보인다. 해당 모델은 현재 시판 중인 스위치2 콘솔과 사실상 동일한 사양을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닌텐도 측은 메모리 및 부품 부족 현상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개정된 제품이 모든 유럽 국가에 동시에 출시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6.07.07 09:57정진성 기자

번개장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굿즈 중고거래 껑충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의 열기가 극장을 넘어 중고 거래 시장까지 삼키고 다. 번개장터(공동대표 강승현·최재화)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 관련 굿즈 검색량과 거래액이 역대 영화 콘텐츠 중 최고치를 경신 중이라고 10일 밝혔다. 누적 관객수 1618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흥행작품 2위인 '극한직업'(1626만 명)의 기록을 턱밑까지 추격 중인 '왕사남'은 번개장터 내에서 단순한 영화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고 있다. 특히 번개장터 데이터 분석 결과, '왕과사는남자 오리지널' 키워드의 검색 증감률은 전주 대비 무려 2800배 상승이라는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특정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전무했던 상태에서 단 일주일 만에 플랫폼 전체를 관통하는 메가 트렌드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 영화의 배경인 1457년 청령포와 어린 선왕 '단종'에 대한 관심이 치솟으면서, 영화 관련 굿즈는 물론 원형이 된 역사적 인물 관련 아이템까지 거래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오티·어진 포스터 구합니다”… 박지훈 '이홍위 포카'는 45만원까지 가장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는 품목은 단연 '오리지널 티켓(오티)'과 '캐릭터 어진 포스터'다.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특전으로 배포된 '왕사남 오티' 관련 키워드는 검색량이 전주 대비 5만7천% 상승하며 팬들의 필수 소장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수량 한정이라는 희소성 때문에 거래가가 형성되고 있으며, 영화의 시각적 미학을 담은 어진 포스터 역시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특히 주연 배우 박지훈(단종 역)의 인기는 가히 독보적이다. 박지훈 키워드는 번개장터 내 수만 개의 검색어 중 전체 증감 순위 1위에 올랐으며, 전체 검색어 순위에서도 12위까지 수직 상승했다. 번개장터에는 극 중 배역인 '이홍위 포토카드'가 무려 45만원에 매물로 올라오는가 하면, 박지훈의 미공개 컷이나 영화관 데이트 포토카드 등 배우 관련 굿즈를 선점하기 위한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배우의 과거 활동 시절 아이템까지 소환되면서, 워너원 포토카드나 과거 발매된 한정판 앨범 등 박지훈의 아이돌 시절 굿즈가 대거 매물로 나오며 신규 유입된 팬들 사이에서 '과거 아이템 풀세트 소장' 열풍이 불고 있다. 'N차 관람'이 만든 'N차 거래'…도서 등 연관 카테고리 낙수효과 팬덤의 화력은 영화 굿즈에만 머물지 않는다. 30~49세 여성 이용자 검색 순위 1위를 왕사남이 차지하면서, 영화의 모티프가 된 단종의 삶을 다룬 '어린 임금의 눈물' 등 관련 역사 도서와 각본집이 번개장터 도서 카테고리에서 역주행하며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영화를 여러 번 보는 'N차 관람' 유저들이 영화의 여운을 간직하기 위해 관련 물품을 수집하는 'N차 거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배우 박지훈이 전체 키워드 증감 순위 1위에 오른 것은 특정 브랜드나 아티스트를 통틀어 유례를 찾기 힘든 데이터로, 왕사남 팬덤의 화력이 배우의 과거 필모그래피와 아이돌 시절 자료까지 소환하는 강력한 '디깅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며 “단순 관람을 넘어 굿즈를 통해 영화의 여운을 간직하려는 이용자들이 늘어나면서, 번개장터가 영화 흥행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팬덤의 놀이터'이자 '리커머스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6.04.10 10:18백봉삼 기자

당신의 팀은 무사한가요

'HR을 부탁해'는 일과 사람에 대한 고민을 가진 이 시대 직장인 모두를 위한 기획 연재물입니다. 다방면에서 활약 중인 HR 전문가들이 인적자원 관련 최신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전달합니다.[편집자 주] 조선 제6대 왕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다. 반역죄로 몰린 왕, 더 이상 아무 힘도 없는 왕이다.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는 그 단종 곁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드는 장면이 있다. 그들은 왕의 신하도 아니고 그를 지켜야 할 의무도 없다. 오히려 왕 곁에 머무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는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떠나지 않는다. 이 장면을 보며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사람은 왜 어떤 곳에는 남고, 어떤 곳에서는 떠날까.” 기업들은 오랫동안 이 질문의 답을 제도에서 찾으려 했다. 성과급을 늘리고 복지를 강화하고 직급 체계를 정교하게 만든다. 하지만 HR 실무를 하다 보면 점점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사람을 남게 만드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경험이라는 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직률이 높은 팀과 낮은 팀을 비교해보면 두 팀 사이에 제도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같은 회사, 같은 복지, 같은 연봉 체계 안에서도 어떤 팀에서는 사람이 계속 떠나고, 어떤 팀에서는 사람이 오래 머문다. 제도는 조건을 만들 수 있지만 경험을 대신할 수 없다. HR 담당자로서 퇴직면담을 하다 보면 종종 아쉬운 순간을 마주한다. 조직에서 꼭 필요한 사람, 동료들의 신뢰도 높고 업무능력도 좋은 사람이 회사를 떠나겠다고 말하는 순간이다. 그럴 때 이유를 묻는다. 더 좋은 연봉일 수도 있고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화를 조금 더 이어가 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리 열심히 하고 성과를 내도, 그냥 여기서는 제가 존중받는 느낌이 없습니다." "의견을 내도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더라고요. 그게 제일 허탈했어요." 퇴직면담을 여러 번 하다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보인다. 사람들은 보통 일 때문에 떠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조직에서의 경험 때문에 떠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조직들은 제도가 부족한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제도는 꽤 잘 갖춰져 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를 운영하는 방식,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다. 영화 속 단종 역시 이미 권력을 잃은 왕이다. 그에게는 사람을 붙잡을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이 곁에 남는 이유는 권력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기억 때문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왕은 명령하는 왕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왕이었기 때문이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리더가 직위와 권한이 조직을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성원이 기억하는 리더는 직급이 아니라 태도다. 회의에서 의견을 어떻게 대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를 먼저 찾았는지, 실패를 어떤 방식으로 다뤘는지 같은 장면들이다. 그래서 조직문화는 거창한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직문화는 매일 반복되는 아주 작은 장면에서 만들어진다. 회의에서 누가 말을 할 수 있는지, 다른 의견이 얼마나 존중받는지, 실패가 학습이 되는지 아니면 낙인이 되는지 같은 순간들이다. 많은 기업이 '인재 확보'를 중요한 전략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재 확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인재가 머무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늠하는 가장 정직한 지표는 성과 수치가 아니다. 오늘 회의에서 가장 말이 없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침묵한 이유가 무엇인지다. 당장 내일 그 사람에게 먼저 물어보는 것, 그 작은 행동 하나가 조직이 살아있는지 죽어가는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유배지 영월에서 단종의 곁을 지켰던 사람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남았다. 떠나라는 압력 속에서도, 이득이 없는 자리에서도.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 왕이 한때 그들을 사람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조직의 진짜 상태는 지표가 아니라 사람이 떠나는 순간에 드러난다. 그리고 사람이 떠나지 않는 팀이 무사한 팀이 아니다. 사람들이 남고 싶어 하는 팀이 무사한 팀이다.

2026.03.10 10:06양은제 컬럼니스트

왜 지금 단종인가…천만 관객이 선택한 '패배한 왕'

왕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었다. 권력을 확장한 왕, 업적을 남긴 왕들에 주목했다. 외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킨 왕의 역사에 열광했다. 그게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왕의 이야기였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단종은 기준 미달이다. 열두 살에 왕위에 올랐지만 힘을 가져본 적이 없다. 권력은 고사하고 자신조차 지키지 못했다.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좌를 빼앗겼고, 유배지 영월에서 짧았던 생을 마감했다. 단종의 삶은 우리가 좋아했던 왕의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패배자의 삶이었다. '패배자' 단종은 한국 영화에서 늘 주변 인물이었다. 그를 정면으로 조명한 영화는 찾기 힘들었다. 대중이 열광한 사극 문법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단종이 지금 한국 영화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의 삶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6일 오후 6시30분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34번째, 한국 영화로는 25번째 천만 영화다. 사극으로는 '왕의 남자'(2005),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명량'(2014)에 이어 네 번째다. 패배가 예정된 왕의 이유 있는 돌풍 이 영화의 천만 돌파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패배가 예정된 왕의 삶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사극 제작자들은 강력한 군주나 영웅을 선호했다.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인물도 단골소재 중 하나였다. 고려를 세운 왕건이나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를 자주 불러냈다. 삼국 통일을 이끈 김춘추나 김유신도 매력적 인물이었다. 세종이나 정조처럼 업적이 분명한 군주들 역시 사극의 대표적인 주인공이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이나 강감찬에 주목했다. '악의 화신' 장희빈의 몰락을 통해 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 사이 흐름이 조금 달라졌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인물들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천만 영화 '광해'는 왕의 자리를 대신한 대역을 통해 권력의 공백을 이야기했다. 영화 '사도'는 왕이 되지 못한 왕자의 비극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이제 단종이다. 왕이었지만 권력을 지키지 못했던 인물, 역사 속 패배자의 이야기다. 그것도 가장 비극적 운명의 희생자인 단종을 스크린으로 불러냈다. 이런 변화는 콘텐츠 환경 변화와도 맞닿아 있는 것 아닐까. OTT 시대가 열리면서 경쟁 무대가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됐다. 특정 국가의 정치사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이 더 넓은 공감을 얻는 환경이 됐다. 권력의 승리보다 권력 속에서 상처받은 인간의 이야기, 완벽한 영웅보다 운명에 흔들리는 인물의 이야기가 더 쉽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글로벌 OTT 시장에서도 거대한 역사적 사건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선택과 감정에 집중한 작품들이 더 주목받고 있다. 건조한 역사 기록에서 건져 올린 '민초들과의 교감' 단종은 그런 서사 흐름에 잘 들어맞는 역사적 인물이다. 왕이었지만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던 소년이었다. 정치의 중심에 있었지만 스스로 운명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역사에서는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헝가리 문예사상가 게오르크 루카치는 역사소설의 주인공은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시대의 격랑 속에 놓인 개인이라고 설명했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운명이 시대의 본질을 더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단종은 매우 전형적인 역사 서사의 인물이다. 권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던 한 소년의 운명이 냉혹한 조선 권력 정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런 단종을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 되살렸다. '영월 유배'라는 건조한 역사 기록에서 '민초들과의 교감'이라는 감정의 서사를 끌어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선택이 관객에게 쉽게 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패배가 정해진 결말을 향해 가는 이야기는 관객에게 불편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관객의 취향도 달라졌다. 권력의 논리보다 인간의 감정에 더 깊이 공감하는 시대가 됐다. 몇 차례의 격랑을 겪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경험과 글로벌 OTT 환경이란 두 요소가 절묘하게 맞물린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왕과 사는 남자'의 천만 돌파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한국 콘텐츠의 무게 중심이 서서히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역사에서 인간의 역사로. 그래서 지금 단종이다.

2026.03.07 07:46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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