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갈림길, 골든타임] 반복되는 중증환자 '응급실 뺑뺑이' 해결 못하나
지디넷코리아는 '생사 갈림길, 골든타임' 연재를 시작합니다. 관련 국내 전문가들이 직접 필자로 참여해 우리나라 응급심뇌혈관 치료 시스템의 문제와 분석,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응급의료 기본계획이 시작된 지 25년이 지났고 매년 2000억이 넘는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아직도 중증 응급환자가 치료를 못 받고 응급실을 전전하는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다. 대구 사망 10대 여학생 사건, 교통사고 이후 복강 내 출혈로 사망한 70대 남성, 의식 불명된지 4시간 동안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한 50대 암환자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이 문제를 해결코자 최근 정부 대책이 나왔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증응급환자가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 응급실 진료를 위한 접수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의 주 원인은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은 24시간 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119로 중증응급질환인 뇌졸중 환자가 응급실을 방문해도 접수 대기를 기다리는 많은 환자들 때문에 접수를 못하고 진료가 지연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응급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환자들은 경증 환자이다. 2021년 응급의료 통계연보 결과를 보면 응급실 환자 중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인 KTAS 1,2에 해당하는 중증응급환자 (중증외상·심정지·뇌졸중·심근경색 등 포함)는 전체 환자 중 겨우 7.2%에 불과하다. 비교적 중증도가 낮은 KTAS 4,5에 해당하는 환자들은 51%나 되며, 해당 질환으로는 감기·장염·발열을 동반한 복통 등이 해당한다. 응급실에서 72%의 환자들이 4시간 이내 퇴실하며, 입원하는 환자들은 13.6%, 수술하는 환자들은 7% 인 수치를 보았을 때 응급실이 경증 환자로 넘치는 것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 사태를 해결하고 경증 환자의 응급실 과밀화를 막고 중증 환자의 치료가 가능한 응급실 병상을 마련코자 추가 대책을 내 놓았다. 제시한 대안은 ▲응급의료상황실 설치 ▲권역응급의료센터로의 경증 환자 이송 제한 ▲지역응급의료센터의 중증응급환자 수용 의무화 ▲병상 부족 시 중증 환자에게 경증 환자의 병상 제공 ▲응급 수술 시행 시 추가 수당 지원 등이다. 언뜻 경증 환자 과밀화 해소에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실제 임상 현장을 오래 경험한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효과를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 갑자기 발생한 증상의 경우 환자들은 경증과 중증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밤이나 주말에는 인근 병원에서 즉시 진료가 어려워 응급실을 찾을 수밖에 없다. 환자들이 넘쳐나는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은 이미 중증 환자에게만 응급실 병상을 배정하고 있으며, 경증 환자들은 대부분 의자에 앉아서 진료를 기다린다. 경증 환자의 병상을 중증 환자에게 제공한다는 것은 작금의 임상환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나온 대책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현재 응급실을 방문할 때 119를 이용하는 환자는 전체 26%에 불과 하며 73%의 환자가 직접 내원하기 때문에 권역응급의료센터로 경증 환자 이송을 제한하는 대책 또한 경증환자 과밀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중증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첫째, 기본적으로 야간과 주말에도 진료가 가능한 지역 의료기관이나 지역응급의료센터 확보가 필요 하다. 지역 응급의료센터에서 상급병원의 진료가 필요할 경우 전원 프로세스를 빠르게 할 수 있는 트리아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기반이 돼야 한다. 둘째, 국민들에게 경증과 중증질환에 대한 꾸준한 홍보 및 교육의 진행도 필요하다. 셋째, 중증응급의료센터는 중증환자진료에 집중해야 하지만 직접 찾아오는 70% 이상의 환자의 입실을 무조건적으로 제한할 수 없는 만큼, 최소한의 응급실 공간의 일부는 중증환자 진료를 위한 인력·시설·공간을 24시간 확보해 둘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응급실은 환자의 치료가 시작되는 곳일 뿐이기 때문에 직접 입원시켜 치료하고 시술 및 수술을 진행하는 전문 진료과의 인력, 시설 및 시스템 확보가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이는 전문 진료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응급실 뺑뺑이'는 20년이 넘게 되풀이되고 있지만 정부 대책은 진료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대부분의 대책은 경증환자에 집중하고 있는 응급의학과의 인력과 시설만 다루면서 의료기관과 의료 종사자들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만 제시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119 및 전문진료과와의 연계 없이는 책임회피와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경증환자에 대한 대책이 없는 10년 전과 비슷한 내용의 응급의료 기본계획이 반복되는 한 향후 20년 뒤에도 병원을 찾지 못해 길거리에서 사망하는 중증응급환자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