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은 도둑이다'는 프레임과 포퓰리즘
대출 이자가 치솟으면서 유명무실했던 '금리 인하 요구권'이 주목받고 있다. 늘어난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을 한 푼이라도 줄이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금리 인하 요구권은 2019년 6월 도입된 제도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재산이 늘어나거나 신용도가 개선될 경우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으며, 대출 시 은행은 이 사실을 고지하고 요구 신청이 들어왔다면 은행은 10영업일 내 이를 검토해 결과를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그동안 금리 인하 요구권이 각광받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은행은 금리 인하 요구권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차치하고 신청 절차도 대면(영업점)에 국한했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2020~2021년 금리가 낮은 수준으로 운용된 탓도 있다. 이 기조는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대부분 은행들이 금리 인하 요구권을 비대면(모바일·인터넷뱅킹 등)에서 신청할 수 있도록 바꿨으며, 이로 인해 신청 건 수가 확 늘어났다고 홍보하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왜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걸까? 정부가 합심해 은행의 대출 이자 인상을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에 그치지 않고 예금과 대출 금리의 차이서부터 금기 인하 요구권의 신청 건 등을 은행연합회에 공지하게 시키자 은행들은 더욱 발벗고 나선 상태다. 은행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 공시라고 볼 수 있다 한들, 이 공시가 금융소비자에게 얼마나 유효한지는 반문하고 싶다. 은행연합회를 보면 은행별로 ▲금리 인하 신청 건 ▲수용 건 ▲이자 감면액 ▲인하 금리 ▲수용률 ▲비대면 신청률을 확인할 수 있다. 공시 주기는 매해 상·하반기로 두 차례다. 이 숫자를 독해해서 얻는 것이 과연 뭘까. 금융소비자가 보유한 대출의 은행들이 금리 인하 요구권 수용률이 몇 프로 수준이니, 내 요구가 어느 정도 받아들일지 확률을 계산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인하해준 금리를 근거로 내 금리도 일정 부분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으라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심지어 금리 인하 요구 수용건을 높이기 위해선 광범위한 대출 금리를 아주 적은 수준으로 인하해주는 것과, 총 이자 감면액을 늘리기 위해 좁은 범위의 대출 금리를 대폭 인하해주는 것과의 선과 악을 구별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정부는 '은행은 도둑이다'라는 프레임을 씌워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은행은 정부의 포퓰리즘에 적당히 동조해 '우산을 씌워주는 은행'이라는 이미지를 가져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세계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는 흐름을 우리나라만 역행하긴 어렵다. 이 시기에 시기적절한 대책은 은행을 '적'으로 낙인찍는 포퓰리즘적 정책이 아니라 정말 유효한 지원 대책이다. 이런 시점서 은행의 대출 금리를 담합했는지 살펴보겠다는 정부 대응은 과거 이명박 정부를 소환시킨다.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수 년이 흘러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으로 보기 어렵다' 혹은 '새로운 지표 금리 개발'이라는 답변을 내놓을 터.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은 내수 소비에 직격타를 준다. 표풀리즘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지, 정부는 실효성 있는 대안을 고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