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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무대에서 촉각 전시·AI 영화까지…공주서 넓힌 문화유산의 경계

문화유산의 디지털 전환이 기록과 보존을 넘어 관객의 참여와 새로운 창작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국악 공연을 화면으로 옮기거나 유물을 디지털로 재현하는 데서 나아가, 사람들이 유산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식까지 설계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18일 국립공주박물관 강당에서 진행된 '2026 디지털헤리티지페스타 산업 컨퍼런스' 첫 번째 세션에서는 '디지털 헤리티지의 새로운 경계'를 주제로 국악과 청동문화재, AI 영화의 활용 가능성이 논의됐다. 최한이 국악인과 조준동 성균관대 명예교수, 신효정 K-CULTURE AI 국제영화제 창립자가 발표에 나섰다. 최한이 국악인은 어린 시절 소형 녹음기와 공테이프에 의지해 판소리를 배웠던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의 소리를 녹음하고 반복해 따라 부르던 기록과 보존의 과정에서, 전승과 창작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 왔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시기 공연의 디지털 전환은 또 다른 과제였다. 즉흥성과 현장성,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한 판소리를 화면 너머로 전달하면서 기존 무대를 그대로 옮기는 방식의 한계를 체감했다고 밝혔다. 최 국악인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현장의 무대를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점”이라며 “경험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고 서사의 구조를 디지털 환경으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이 필요했다”고 짚었다. 그는 전통의 요소와 형태를 남기는 보존과, 수행 능력과 맥락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전승을 구분했다. 이를 바탕으로 ▲자료를 기록하는 디지털화 ▲디지털 매체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스토리텔링 ▲관객이 참여하는 경험을 설계하는 디지털 내러티브의 차이를 설명했다. 구체적인 기획 예시로는 관객이 방자나 향단 등 인물의 시점을 선택해 감상하는 '춘향가'를 제시했다. 등장인물의 관점에 따라 이야기를 다르게 만나고, 필요한 역사적 자료를 확인하거나 언어와 음악적 표현을 탐색하도록 구성하자는 것이다. 최 국악인은 “한 가지 주안점을 꼽자면 '선 설계 후 기술'이라고 말하고 싶다”며 “AI를 위한 춘향가, VR을 위한 춘향가가 아니라 이면에 맞는 기술의 선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판소리 학습 앱 '소리로'와 국악 장단 연습 앱 '한배' 등은 디지털 기록이 실제 학습으로 이어지는 사례로 소개했다. 배우고 싶은 대목을 선택해 반복하거나 장단의 속도를 조절하며 연습하는 방식이 기존 전승 과정의 제약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속 가능한 활용을 위한 권리 보장도 주문했다. 최 국악인은 “전승자에 대한 권리가 새로운 설계와 새로운 보장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현장과 디지털이 서로 대치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매력으로 상생하고 서로의 뮤즈가 되는 생태계가 구성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조준동 명예교수는 청동문화재를 공학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작업과 촉각·AI를 결합한 전시 사례를 공유했다. 반도체 설계와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을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물에 담긴 설계 규칙과 현대적 활용 가능성을 탐색했다는 설명이다. 주요 사례는 다뉴세문경이었다. 조 교수는 약 0.3㎜ 간격의 세밀한 선과 삼각형 문양에 주목하고, 서로 이웃한 삼각형의 빗금 방향을 달리한 구성을 빛의 반사와 연결해 해석했다. 세 방향의 빗금과 반도체 설계의 규칙을 비교하며 고대 유물에 새로운 공학적 질문을 던진 것이다. 조 교수는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어떻게 주조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해왔다”며 “저는 왜 이렇게 설계했는지, 왜 이런 패턴을 만들었는지가 궁금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찰에는 직접 만지고 움직일 수 있는 복제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국보이기 때문에 유리 안에 넣어두면 만질 수 없지만, 복제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만질 수 있다”며 복제품을 햇빛 아래에서 돌려보면서 빛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문양을 살펴봤다고 설명했다. 반가사유상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연결한 '침묵의 공명' 전시는 유물을 감상하는 감각의 범위를 넓힌 사례다. 시각장애인도 복제품을 만지며 형태를 이해하고, 작품의 자세를 따라 하거나 AI와 대화하며 의미를 탐색하도록 구성했다. 조 교수는 “이런 도구들이 사람의 행동을 유도하고, 행동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며 “복제품을 촉각으로 만지고 가지고 놀면서 우리나라의 우수한 문화유산이 지닌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효정 창립자는 AI 영화를 통해 역사 기록을 감각적인 이야기로 전환하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백제의 웅진 천도를 소재로 제작한 영상을 상영하며 인물의 옷차림과 표정, 음성과 움직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같은 역사적 소재도 다른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잘 보존된 문화유산을 어떻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이야기로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라며 “보존의 시대에서 경험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확장의 방향으로는 ▲AI 영화 ▲디지털 전시 ▲교육 콘텐츠 ▲글로벌 홍보 콘텐츠를 제시했다. 박물관과 기념관의 몰입형 체험을 강화하고, 청소년과 일반 대중의 역사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언어와 형식의 장벽을 낮춰 해외 관객에게도 전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창작의 출발점은 역사적 사실과 해석, 상상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신 창립자는 웅진 천도 영상을 제작하면서 AI에 자료를 계속 제공하고 이미지를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료가 빈약할 때는 잘못된 영화가 나온다”며 “AI가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주도가 돼서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원자료와 역사의 맥락을 존중하고 기술 그 자체보다 해석의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6.10.18 13:40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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