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수혜주 없는 '한국판 IRA' 왜 하나?
산업계에서 수 년간 도입을 호소하던 '한국판 IRA(국내생산세액공제)'가 마침내 추진된다. 미국이 현지 생산 배터리, 재생에너지, 전기차 등에 대규모 세액공제를 지원하는 IRA를 본따 국내에서도 세액공제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IRA 정책으로 경제가 위축되던 지역에 공장을 대거 유치하고 일자리 창출 성과도 거뒀다. 막대한 재정을 지출한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관련 산업들의 생산 거점은 사실상 자국 기업 위주인 중국과, 확실한 지원을 받는 미국으로 양분된 형태가 됐다. 제조업 부흥과 경제 안보라는 소기의 목표를 이룬 셈이다. 미국 IRA가 발표될 당시 우리나라 배터리와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수혜주로 조명받았다. 기업에 따라서는 IRA로 누리는 이익 규모가 분기당 수천억원에 달할 정도로 상당하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이 급랭한 지금도 이 세제 지원이 기업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는 지원 규모뿐 아니라, 기업 친화적인 제도 설계 덕이 크다. 세액공제분을 현금으로 직접 환급받거나, 제3자에게 세액공제 권리를 매각할 수도 있다. 기업들이 어려운 사업 환경에서 발생한 적자를 상쇄하고 그나마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한국판 IRA 추진 소식에도 업계가 어깨를 펴지 못하고 있다. 여러 혜택 조항들이 빠졌을 뿐 아니라, 허들도 추가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이더라도 수출 물량은 세액공제 산정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제도 논의 초반부터 산업계가 지적해온 부분이다. 국내 시장이 해외보다 턱없이 작기 때문이다. 관련 기업들의 내수 대비 수출 비중은 많게는 수십 배 이상에 이른다. 내수 판매분에 대해서만 세액공제를 받는다면 미국 IRA만큼의 '통 큰'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조건에선 한국판 IRA가 시행되더라도 기업들이 국내 생산을 늘릴 유인이 되지 못한다. 제도 시행 취지인 제조업 유치 및 육성부터 이미 실패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도 최근 경쟁적으로 현지 생산 지원책과 규제를 병행 추진 중인 상황에서 전기료, 인건비 등 고정비도 비싼 국내에 공장 설립을 택할 이유가 없다. 국내 위주로 생산하는 배터리 소재사들도 판매는 수출 위주라 기대치가 미미한 건 마찬가지다. 한국판 IRA 세부 내용이 발표되기 전까진 정책 수혜 규모가 클 것이란 전망도 일부 나타났으나, 오히려 발표 후 이런 기대감이 실종됐다. 법인세도 내지 못해 당장 공제할 세금이 없는 적자 기업이라면 이처럼 미미한 지원도 현 시점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산업계가 세액공제 직접환급제 및 제3자 양도 도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흑자 기업만 지원을 받고, 적자 기업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더 하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란 지적 또한 꾸준했다. 정부는 전략적 중요성이 인정되고, 국민 경제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산업의 경쟁력 유지 및 발전을 위해 한국판 IRA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제도 시행에 따른 '수혜주'를 자처하는 기업은 찾아 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