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3대 해커라 불렸던 그들, 지금 뭐하고 있나
10여년전, 한국에 세계적 3대 해커라 불린 이들이 있었다. 모두 1980년대생으로, 해킹방어대회를 역대 가장 어린 나이에 우승하거나 연속 우승하면서 천재급으로 주목받았다.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근황을 살펴보니 여전히 정보보호 전문가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가 하면 누군가는 기억에서 잊힌 사람도 있었다. 보안전문 기업 스틸리언 설립자인 박찬암 대표도 3대 천재 해커 중 한명이었다. 3인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3일에는 서울 용산 본사에서 설립 10주년 기념식도 열었다. 화이트 해커는 '착한 해커'다. 서버 취약점을 연구해 해킹을 막을 법을 찾는다. 나쁜 의도로 해킹해 돈을 요구하는 '블랙 해커'와 반대된다. 박 대표는 화이트 해커답게 수사기관을 도와 나쁜 해커 잡는데도 열심이다. 2017년부터 경찰청 사이버위협정보전문가 모임과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사이버범죄중점수사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 공로로 2020년 존경받는 기업인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표창과 지난해 정보보호 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18년에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아시아의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으로 뽑기도 했다. 박 대표는 10년 넘게 정보보호 기업 스틸리언을 경영하고 있다. 26세 학생이던 박 대표가 2015년 창업한 스틸리언은 지난 1일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5명이 시작해 10년 만에 직원 100명, 연 매출 100억원을 눈앞에 둔 회사로 성장했다. 박 대표는 아직 스틸리언을 상장할 계획이 없다. 외부 투자자 눈치 보느라 신사업을 만들어 덩치를 키우기보다 내실을 다지겠다는 입장이다. 그저 어릴 적부터 컴퓨터와 외계인을 좋아해 이 길로 들어선 사람답다. 박 대표는 1989년 부산에서 태어나 인하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회사 이름은 '외계인 기술을 훔친다'는 뜻으로 훔치다(Steal)와 외계인(Alien)을 합해 '스틸리언'이라 지었다. 또 다른 3대 세계적 해커는 홍민표 에스이웍스 대표다. 2000년대 해킹 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3대 해커'로 불렸다. 홍 대표 역시 컴퓨터 게임이 재미있어 보여 컴퓨터 세계에 빠졌다. 그의 첫 번째 해킹은 중학교 2학년때로, 외산 소프트웨어(SW) 정품 고유 번호(serial number)를 풀어냈다. 이를 불법으로 인식하지 않던 시절이라 돈 없던 학생의 수확으로 여겼다. 이후 산업기능요원으로 있으며 같이 대체복무하던 친구들과 함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주최 해킹대회에서 우승했다. 홍 대표 역시 화이트 해커가 돼 2010년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 등을 받았다. 고려대 대학원에서 정보보호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홍 대표는 에스이웍스를 차리기 앞서 2008년 쉬프트웍스를 설립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백신을 개발하기도 했다. 2009년 7월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사태가 터져 온 나라가 난리났을때, 국가정보원은 북한을 의심했지만 홍 대표가 공격자 서버가 미국에 있음을 밝혀 일약 유명해졌다. 그의 실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2000년 카이스트가 주최한 '세계해킹대회'에서 전 세계에서 온 수백 명의 해커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당시 상금이 2만 달러(약 2400만원)였다. 이후에도 후배 해커들을 위해 만든 '와우해커 그룹(WOWHACKER GROUP)' 멤버들과 함께 해커들 월드컵인 데프콘(DEFCON)에 7번 참여해 5번이나 본선에 연속 진출, 단일팀으로 최고 기록을 세웠다. 에스이웍스 전에 두 번의 보안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했고, 엑시트에 성공했다. 주산을 잘했던 홍 대표는 초등학교 4학년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고, 이것이 인생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쉬프트웍스를 매각하고, 이듬해인 2012년 현재의 에스이웍스를 세웠다. 에스이웍스는 모바일 앱을 외부인이 분석하지 못하게 막는 '앱솔리드'를 개발해 내놨다. 또 보수 경영을 펼치고 있는 스틸리언과 달리 투자도 받았다. 일본 투자 회사 소프트뱅크가 15억원,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이 5억원을 각각 투자했다. 이후 홍 대표는 미국에도 법인을 세우고 에스이웍스 본사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겼다. 3대 해커 가운데 나머지 1명은 1989년생 구사무엘이 꼽힌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7년 정보통신부 해킹대회 본선에 진출했고, 같은 해 고교생 해킹 보안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08년 건국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했고, 메이킹(mayking)이라는 팀의 구성원으로 제5회 KISA 해킹방어대회에 참가해 1위를 차지했다. . 이렇게 유명해지자 주요 언론에 소개됐고, 여러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강연하기도 했다. 이후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구 씨가 해커가 된 계기는 고등학교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재미를 느꼈고, 고등학생 최초로 해킹 방어대회에 출전하면서 해킹에 빠졌다. 오래전 그는 어느 한 인터뷰에서 "해킹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쁨 자체"라며 "이미 알려진 해킹 기법을 사용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다. 기존 기술 답습이 아닌 새로운 유형의 기술을 끊임없이 발굴하는 해커가 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학 전공은 컴퓨터가 아닌 경영을 택했는데, 컴퓨터를 넘어 보다 넓은 시야를 갖고 싶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