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색깔 자유롭게 바꾸는 물고기, 피부도 눈 역할?
문어나 놀래기 같은 동물은 주변 환경에 맞춰 재빠르게 몸 색깔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동물은 자기 몸 색깔이 어떻게 변했는지 인식할 수 있을까? 포식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 피부색을 바꿨는데, 색이 주변 환경에 따라 제대로 변하지 않는다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미국 듀크대 등 연구팀이 아메리카 대륙 인근 대서양에 흔한 물고기인 놀래기를 연구, 이들이 피부색을 바꾸는 과정을 밝혔다. 놀래기는 피부 밑의 광수용체를 통해 피부색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눈뿐만 아니라 피부로도 '보는' 셈이다. 이 연구는 22일(현지시간)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실렸다. 놀래기(Lachnolaimus maximus)는 주변 환경에 맞춰 피부색을 붉은 계열의 점박이나 주변 산호와 비슷한 푸른색 등으로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 포식자를 피하거나 먹이를 잡기 위한 위장이나 짝짓기 등에 주로 쓰인다. 심지어 낚시꾼에 잡혀 죽은 상태에서 몸 색깔이 낚시배 갑판과 비슷하게 바뀌기도 한다. 연구팀은 2018년 놀래기를 연구해 피부에서만 발현하는 광수용체 옵신 유전자가 있음을 발견한 바 있다. 옵신은 눈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며, 오징어나 문어의 경우 홍채와 피부의 옵신이 같은 경로로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놀래기는 홍채에서 빛을 감지하는데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피부에서는 거의 발현되지 않았다. 이는 놀래기 눈과 피부의 시각 능력이 별도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놀래기 몸 여러 부분에서 피부 조직을 떼어 투과형 조직 현미경으로 분석했다. 놀래기 피부엔 붉은색이나 노란색, 검은색 입자들이 들어있는 색소체라는 세포들이 점묘화처럼 점점히 분포하고 있었다. 이들 색상 입자들이 색소체에 고루 퍼지면 피부색이 어두워지고, 좁은 한 영역에 몰리면 피부색이 밝아진다. 또 면역레이블링 기법으로 광수용체 유전자 'SWS1' 단백질의 위치를 보다 정확하게 추적한 결과, 옵신은 색소체가 아니라 그 바로 밑의 다른 세포에 모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래기 피부의 광수용체는 일단 색상 입자들이 분포한 색소체를 통과한 빛을 감지한다는 의미다. 색소체의 색상 입자들이 고루 퍼져 있으면 빛의 파장이 차단되어 광수용체가 빛을 감지하기 못하고, 한곳에 모여 있으면 빛이 통과해 광수용체가 감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고개를 돌려 자기 몸을 볼 수 없는 놀래기가 눈으로 보지 않고도 피부색의 변화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광수용체가 신체 내부에서 몸 표면 피부의 사진을 찍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이는 눈을 보조하는 역할일뿐, 눈과 같은 기능을 하지는 않는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눈은 빛을 감지할뿐 아니라 이미지를 형성하는 등 훨씬 복잡한 작용을 한다. 놀래기가 눈으로 본 것에 따라 피부색이 변하면 피부 밑 광수용체는 이를 감지해 더 환경에 맞게 조절하는 감각 피드백 작용을 하는 것이다. 색소체가 주변 환경에 따라 색이 변하는 과정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논문 교신저자인 로리안 슈바이커 노스캐롤라이나주립 월밍턴대 교수는 지디넷코리아에 보낸 이메일에서 "색소체의 작동은 신경계와 내분비계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보인다"라며 "눈을 통해 감지된 환경 변화에 대응해 최적의 반응을 하도록 피부의 피드백 시스템이 지원한다"라고 말했다. 이 발견은 앞으로 자율주행 차량이나 로봇이 카메라 등을 통한 시각 정보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도 정밀하게 작동할 수 있게 하는 피드백 시스템 개발에도 쓰일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