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의 헤디트] 천마총이 디지털 예술로 다시 살아 숨 쉰다
1973년 경주 황남리 고분군에서 천마도 장니, 신라 금관, 금제 허리띠 등 국보 4점, 보물 6점을 비롯한 총 1만1천526점의 신라 유물이 출토됐다. 당시 세계가 주목할 만한 한국고고학의 대사건이었다. 이후 고분은 천마총으로 명명되어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문화재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는 천마총이 발굴된 지 50년이다. 이를 기념하여 문화재청 직속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추진단은 그 의미를 되짚어보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최첨단 미디어아트쇼도 펼쳐진다는 소식이다. 경주시 문화재과가 지난해 문화재청 국비공모사업(총사업비 17억4천만 원 규모) 선정으로 이룬 쾌거다. 신라 천년의 숨결이 빛의 예술로 다시 재현된다. '세계유산(문화유산) 미디어아트'가 경주에 상륙한다. 이 사업은 2021년부터 시작된 문화재 활용사업의 하나다. 지역별 유산의 특성에 맞게 ICT 워킹 투어, 프로젝션맵핑 미디어파사드, 융복합 미디어퍼포먼스, 실감형 콘텐츠, 인터랙티브 아트 등 첨단기술로 구성된 야외 디지털 페스티벌이다. 문화재가 예술, 디지털과 융화하여 시민들이 문화유산을 새롭게 경험하도록 하고 외지인을 지역에 방문하도록 하는 체류형 야간관광이다. 미디어아트가 열리는 장소는 23기의 신라시대 고분이 모여 있는 대릉원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 천년 고도로 한국의 건축양식과 불교 발달에 있어 중요한 유산을 품고 있다. 2000년, 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주역사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세계유산 미디어아트는 코로나19의 유산이다. 코로나에 따른 환경 변화와 디지털 전환기를 맞아 문화유산 활용 현장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2020년, 사회적 거리두기로 개방된 공간에서 첨단기술로 문화재를 누릴 수 있는 도보 관람형 야외 프로그램의 필요성이 대두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우리 문화재를 재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특히 문화재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고 정체성을 담아내 코로나 블루를 겪은 우리 국민을 위로했다. 더불어 침체한 관광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미디어아트가 열리는 문화재 주변 상권은 야간관광지로 발돋움했고,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골목상권의 불빛을 밝혔다. 특히 한류 열풍과 함께 한국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전하며 방한 관광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도 했다. 경주 대릉원 일원에는 7개의 사적이 분포돼 있다. 신라 미추왕릉, 경주 황남리 고분군, 경주 노동리 고분군, 경주 노서리 고분군, 신라 오릉, 경주동부사적지대, 재매정이다. 대릉원은 경주관광에서 동부사적지, 황리단길 등 경주의 주요 관광지와 도심을 잇는 거점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이었던 2021년에도 연간 108만여 명이 입장할 만큼, 경주를 대표하는 사적지다. 경주시에 따르면 5월부터 대릉원이 무료로 개방된다고 한다. 관람료가 사라지면 황리단길과 동부사적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무료화된 대릉원을 통해 도심 권역으로 유입돼 도시 전체가 활기를 띠게 된다. 경주시는 관광산업을 넘어 첨단산업 육성 등 차세대 과학혁신도시로의 도약을 위해 미래 먹거리 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문화재청의 미디어아트 공모사업 선정으로 단순 관람에서 벗어나 체험하고 소통하는 콘텐츠를 접목해 시민들에게 문화재 활용을 통한 문화향유권을 증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관광자원 발굴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주시 문화재과에 따르면 “올해가 천마총 발굴 50주년임에 따라 천마총, 황남대총의 출토유물과 역사‧예술적 가치를 빛, 사운드, 움직임 등 오감을 자극하는 신개념 연출에 주안점을 두고 켜켜이 쌓인 신라의 흔적을 역동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5월 개막을 목표로 준비한다”고 한다. 경주시가 처음 수행하는 미디어아트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콘텐츠가 관건이다. 주제와 시나리오 개발, 장소별 프로그래밍, 하드웨어 시뮬레이션과 파일럿 테스트까지 프리 프로덕션이 사업의 반이다. 이와 함께 관람서비스, 홍보전략, 관광마케팅, 안전관리를 포함한 페스티벌로서의 마스터플랜을 완성하는 것도 사업 초반부에 기초를 잡아야 한다. 정교한 설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는 현대미술이나 영상예술로서의 일반적 미디어아트와 달리 대상 문화재의 고유한 가치와 특성, 장소성을 공감력 있는 스토리로 풀어내 예술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그것의 현장 전시를 위해 대상 문화재의 건축적 특성과 경관적 요소를 전방위적 고려한 하드웨어 설계가 핵심이다. 궁극적으로 한 편의 공연물과 같은 아트쇼, 낭만적 디지털 야행으로 실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기승전결의 감동적 스토리 개발, 몰임감 있는 콘텐츠 제작, 최첨단 하드웨어를 통한 웅장한 디지털 연출로 대중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담당공무원이 행정가로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PD 역할이 돼야 한다. 꼭 방송을 만들고 공연을 만드는 프로듀서가 아니라 문화기술(CT) 연구개발자, 문화재 활용 기획자로서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만큼 사업 초반의 프리 프로덕션과 마스터플랜은 공사의 설계도처럼 프로젝트 성공의 바로미터가 된다. 총감독 선임이나 제작단 설치 등 민간의 첨단기술 분야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프로덕션 전체의 초석을 잘 다져야 한다. 시나리오 구성과 스토리보드 디자인을 비롯한 프리 프로덕션이 선행되면 미디어아티스트들과 함께 메인 프로덕션인 콘텐츠 제작을 거쳐 포스트 프로덕션 후반작업까지 안정적으로 개막할 수 있는 추진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AI), 혼합현실(MR), 확장현실(XR), 메타버스까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 문화예술 현장에서도 이런 변화를 급격하게 맞이하고 있다. 최신의 첨단기술이 실감형 공연‧전시 연출과 융합해 이미 '아트&테크놀로지'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 2003년 유네스코가 디지털 유산 보존에 관한 헌장을 통해 제시한 '디지털 헤리티지'도 마찬가지다. 미디어아트를 통해 단조롭던 문화재가 역사의 현장에서 동시대성을 담은 공감력 있는 콘텐츠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사업 3차 연도를 맞은 문화재청의 '2023년 문화유산 미디어아트'는 K-콘텐츠와 K-헤리티지를 넘어 K-미디어아트의 교두보가 되리라 본다. 올해는 정부 차원의 '2023-2024 한국방문의 해'다. 신라 천년고도의 밤을 디지털 예술로 밝힐 헤리티지 미디어아트가 전 세계 한류 팬에게 방문하고 싶은 국가로 대한민국의 창조적 관광매력물이 되길 바란다.